[시애틀 수필-이한칠] 가을을 찍다
- 21-11-30
이한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가을을 찍다
‘내가 만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대의 우주에 햇빛이 될래요.’
‘97년 그래미상을 휩쓴 에릭 클랩턴 노래(Change the World)다. 세상이 쉽게 바뀌겠냐마는 내가 바뀐 건 맞다. 스쳐 버린 것들이 새삼 보인다. 삼라만상이 곰비임비 내게 다가온다. 그 모습들을 재삼재사 들추어 내어 나만의 뷰파인더에 자꾸 담는다. 사진으로나마, 에릭 클랩턴의 노랫말처럼 나도 누리에 빛이 되고 싶다.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나무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른다. 곧게 뻗은 기상이 올차다. 인고의 세월을 온몸에 새긴 외피, 굵은 주름살이 고스란하다. 나는 활처럼 휘어져 하늘을 향해 셔터를 누른다. 고목의 민낯 주름을 아로새긴다.
행사에서 사진을 즐겨 찍는다. 순수한 봉사다. 인물사진을 찍을 때, 나는 표준 단렌즈를 주로 사용한다. 그 렌즈는 대상을 꾸밈없이 표현해준다. 한껏 모양낸 이들이 흘리는 순간을 슬며시 붙든다. 이쪽 보세요. 없는 재롱도 피우며 요것조것 주문한다.‘지금 모습이 가장 젊고 아름답습니다.’내가 중년의 끄트머리에 서있어서일까, 나이든 분들 사진 찍을 때면 괜히 신이 난다. 꾸밈없는 순수한 모습을 붙잡는다.
귀한 수석이 내게 왔다. 어린이 키만 한 산수석(山水石)을 정성스레 가공한 미석이었다. 천연석을 좋아하는 나도 반할 정도로 섬세했다. 그는 한동안 거실의 명당을 차지했다. 얼마 뒤, 나는 그 수석을 눈독 들이던 친구에게 미련없이 넘겨주었다. 사진을 찍다 보면, 자연 그대로에 눈길이 끌린다.
세상 모든 것이 마음먹기 나름이다. 같은 사람과 사물을 대하면서도 내 기분에 따라 달리 보일 때가 있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찍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대상을 보느냐에 따라 사진의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본인 셀 폰 홈 화면에 띄워 놓은 친구들이 있다. 자신의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 영정사진으로 딱 어울린다며 간직한 어르신들도 있다. 메탈 프린트를 만든다며 원본 사이즈를 청하기도 했다. 실물보다 잘 나왔다며 말로 건네받은 선물이 수두룩하다. 요런 맛에 나는 야외나 실내를 가리지 않고 발품을 팔고 있나 보다.
공원에서 노부부 사진을 촬영했다. 웃음기 없는 두 분은 심각한 표정으로 떨어져 섰다. 내 주문대로 남편이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이런 포즈는 처음이라나. 쑥스러워하면서 활짝 웃었다. 그 순간을 포착, 찰칵. 사진을 보고 그의 아내가 내게 연락했다. ‘크게 빼고 싶은데요…’. 사진을 큰 사이즈 캔버스로 만들어 거실에 걸었단다. 그 뒤, 입꼬리가 확실하게 올라간 그들을 만날 때면 나도 따라 웃는다.
꼬네꼬네. 여섯 달 된 아기가 아빠의 오른손 바닥에 두 발을 딛고 곧게 섰다. 앙증맞은 주먹을 꼭 쥔 채 까르르 웃는다. 손바닥 위 아기를 조심스레 어르고 있는 젊은 아빠가 환하게 웃음 짓는다. 그의 그림자가 머금은 옆얼굴 미소가 대박이다. 아기와 아빠 그리고 그림자, 세 사람의 행복을 찍었다.
우리 집 근처, 가을이면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삼각대를 놓고 해마다 촬영했다. 유난히 붉은 단풍 사진들이 주변에 화제가 되었다. 내가 찍은 사진을 보고 좋아하는 지인들이 늘어났다. ‘마주 보세요.’ 매년 시월 마지막 주말, 원하는 이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촬영을 끝낸 뒤, 부근 맥주 공장 카페에서 들이키는 흑맥주 맛은 꿀맛이었다. 사진 찍은 죄로 맥주 값은 내 보질 못했다. 그렇게 더불어 만추를 즐긴 지 강산이 바뀌었다.
매년 시월에 촬영하던 단풍 사진을 올해는 시애틀이 아닌 동부에서 찍었다. 뉴햄프셔주에 있는 화이트 마운틴은 레이니어산만큼이나 유명하다. 가장 높은 봉우리인 워싱턴 마운틴을 기차 대신 차로 한 바퀴 돌았다. 정상에서 바라본 사각 팔방은 다채로운 양탄자였다. 메인, 버몬트, 뉴햄프셔주의 가을 단풍을 차곡차곡 주워 담았다.
나는 피사체에서 그들만의 개성을 찾는다. 관심 기울이는 대상에는 제풀로 눈이 간다. 내가 건진 아름드리 고목과 가을 단풍 사진들도 그랬다. 그 고목(古木)의 당당한 기백과 활활 타오르는 단풍의 열정을 닮고 싶어서였을까. 내가, 내 안에 깊이 숨겨진 내 맘을 찍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서북미 좋은 시-정혜영] 공작단풍 그 이름을
- 오리건주와 워싱턴주 목회세미나 및 말씀사경회 열린다
- 오리건주서 6ㆍ25 제74주년 기념식 열려(+화보)
- 시애틀영사관 한국국적 일반행정직원 채용한다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시애틀산악회 29일 토요정기산행
- 이장우 대전시장 명예 시애틀한인회원 됐다(화보)
- US메트로 김동일 행장 임기 3년 연장키로
- US메트로은행 '미 전국 중소은행중 실적 탑 20'에 들어
- 이장우 대전시장, 스타벅스 관계자 만나 '로스터리 대전건립 추진'
- 재미 한인 탁구인들의 축제 성황리에 열렸다
- KWA대한부인회 타코마아파트 다음달 신청받는다
- 시애틀-대전 자매도시 35주년 기념행사 화려했다(영상,화보)
- "한국일보 청암장학생 신청하세요"
- 시애틀 한인중고생 위한 SAT캠프 열린다
- 시애틀타임스 “양희영, 은퇴하면 안될 실력자다”
- [영상] 샛별예술단 베냐로야홀서 공연 펼쳐
- 지소연 선수, 시애틀한인회 명예회원됐다(+영상,화보)
- 페더럴웨이 한국정원 ‘한우리 정원’ 10월 개장한다(영상)
- 미주한인의 날 워싱턴주 신임 이사장에 김성훈, 대회장 김필재(영상)
- [시애틀 수필-김윤선] 찬란한 빛의 밤
- [신앙칼럼-최인근 목사] 인생은 결단입니다!
시애틀 뉴스
- 아번 경비행기 추락원인도 "부품조립 잘못"
- 시애틀지역 버스와 경전철, 스마트폰으로 요금낼 수 있다
- 맥주 원료 홉(Hop)재배 워싱턴주 업자들 "힘들다 힘들어"
- 아마존 20달러 이하 중국 직구몰 오픈한다
- 페더럴웨이 I-5 달리던 차량서 살인 사건발생
- 시애틀서 집사려면 이렇게 힘들다니....현재 중간소득 7배 벌어야
- 보잉 '737맥스 사고'관련, 당국과 협의 막바지에 들어섰다
- 보잉 유인우주캡슐 ‘스타라이너’ 수리중이다
- 결국 워싱턴주 아번경찰관 살인죄 평결 받았다
- 워싱턴주 유명 요리사의 '파격행보' 화제다
- SK 최태원회장, 시애틀 와서 MS CEO만났다
- 미 대법원, 아이다호 응급 낙태 허용…바이든 정부 '작은 승리'
- 아마존도 사상 최고가 시총 2조달러 돌파했다
뉴스포커스
- 서울시청역 교차로 교통사고 최소 9명 사망…운전자, 급발진 주장
- 고대의대 교수들, 12일부터 무기한 휴진…"진정성 있게 대화 응해야"
- '반도체·車'가 견인한 상반기 수출, 9.1% 늘어난 3348억불…'역대 2위'
- 류호정 "누굴 먹어? 우습고 빡친다… 의원 때 나도 성희롱 당첨"
- "호텔서 때리고 낙태시켰잖아" "내가 언제?"…허웅, 전 여친 녹취록 공개
- '천만 베이비부머' 은퇴에 성장 추락?…고용연장 땐 타격 '반절'
- '4년만의 신차' 잔칫상 덮친 '집게 손'…르노코리아 "진상조사"
- 가스요금 7월1일자 인상 보류…이달 중 오를 가능성은 '여전'
- KT, AI 역량 강화한다…엔씨소프트 출신 신동훈 상무 영입
- "한 대학에서 4년제·전문대 과정 다 운영한다"
- '尹 탄핵 청원' 열흘만에 70만명 돌파…오늘만 3만명
- '김만배와 돈거래' 前 언론사 간부 사망…檢 "깊은 애도"
- "아리셀 대피로에 배터리 쌓여 탈출 못했다"…경찰, 안전 위반 집중조사
- 고물가에 1분기 가구 지출 2.6조 증가…먹고 자는데 1.3조 더 썼다
- 추경호 "화성 화재, 부끄러운 후진국형 사고…안전불감증 대책 필요"
- 최태원 SK회장 "AI 밸류체인 리더십 강화…2026년까지 80조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