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하지 못한 진심, 이제는 한글로"…베트남 엄마의 첫 손편지
- 21-10-09
조금은 틀린 문법, '요' 자와 '다' 자가 뒤섞이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를 꺼낼 때면 제법 말 속도가 빨라진다. 말투에는 전라도 사투리도 섞여 있다.
575돌 한글날을 이틀 앞둔 지난 7일 오후 전남 장성군 다문화엄마학교에서 만난 무티하짱(25). 한글을 배우는 앳된 얼굴의 '학생'이지만 여섯 살 딸과 세 살 아들을 둔 아이 엄마이기도 하다.
한국 생활 6년 차인 무티하짱은 한글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매일 다문화엄마학교에서 한글을 쓰고 익힌다. '믿음직한 엄마', '엄마다운 엄마'가 되기 위해서다.
무티하짱은 베트남 하이증성이 고향이다. 학창 시절. 텔레비전을 틀면 유난히 한국 드라마와 영화, 가수들의 음악방송이 자주 나왔다.
TV 속 한국의 모습이 친근해졌을 무렵인 2016년, 무티하짱은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한국인 남편을 만났다.
무티하짱은 결혼 전에도 베트남에서 한글학교를 다니며 한글을 배웠다. 그런데도 한국에 오니 어려운 '한글'과 '한국어'가 발목을 잡았다.
사투리를 쓰는 시어머니의 말은 도통 알아듣기 어려웠다.
사투리를 알아듣지 못해 '뭐라고요?'라며 하루에도 수십번 되물었다가 시어머니에게 미움을 받았다.
또 장을 보러 가서 직원에게 "안녕히 가세요"라고 반대로 인사했다가 주위 사람들의 웃음을 사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6년, 울고 지쳐 포기하고 싶던 때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 일어섰다.
"엄마다운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커가는 아이들에게 언제까지나 어눌하고 한글도 못 뗀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고향에서부터 좋아했던 한국 드라마를 몇 번이나 돌려보며 대사를 무작정 따라 읽었다. 사극이고 현대극이고 구분 없이 한글 자막을 동시에 틀어놓고 명대사를 따라 쓰기도 했다.
마침 2017년부터는 장성군에서 운영하는 다문화엄마학교의 초등 교육과정이 개설돼 그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초급반 땐 한글의 모음과 자음을 외우는 것이 재미있었다. 중급반에 들어서는 '보글보글', '빙글뱅글', '살금살금' 등 재밌는 의성어와 의태어를 동료들과 농담처럼 주고받으며 지냈다.
다문화엄마학교와 주변 동료들의 도움으로 2019년 말 국적 취득 시험에 응했다. 올해 초 드디어 한국 이름 '이지아'가 적힌 주민등록증도 받았다.
"한국 드라마 좋아하니까요. <펜트하우스> 이지아 언니 너무 좋아해서 한국 이름 '이지아'로 따라 지었다요. 역할 이름이 '심수련'인데 그거는 받침이 있어서 쓰기가 어려워…"
국적을 취득한 후에는 '애국심'과 함께 자신감이 붙었고 이는 검정고시 준비까지 이어졌다. '이지아'가 된 '무티하짱'은 올해 1월부터 국어와 수학, 사회, 도덕 등 총 6과목을 공부했다.
"엄마니까 초등학교는 졸업해야 돼. 근데 한국말 너무 헷갈린다요. 문제 중에 '틀린 거' 고르는 거랑 '옳은 거' 고르는 거 너무 어려웠어요."
지문조차 읽기 어려웠다. 그럴 때면 번역기를 이용해 밤낮이고 문제를 다시 읽었다.
밤을 새워서 공부를 할 때면 택시기사 일을 하는 남편이 퇴근 후 집에 와 간식과 함께 응원을 건넸고 다문화학교 선생님들도 문제를 이해할 때까지 도움을 줬다.
지난 8월 드디어 무티하짱은 초등학교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그와 같이 공부한 중국, 인도네시아 국적의 다문화 엄마 5명도 함께 합격의 기쁨을 누리게 됐다.
무티하짱은 휴대폰 사진첩 속에 저장된 합격증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었다.
"이제 시작이야. 왜냐면 주민등록증 있는 한국 사람이잖아요? 열심히 한국말 배워서 한국에서 직장도 갖고 자랑스러운 엄마 될래요."
얼마 전 아들 생일 때는 처음 '한글 손편지'도 썼다.
'우리 종현이가 벌써 두 번째 생일이네…네가 태어나던 때도 오늘처럼 참 더웠어.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너무나 고마워… 엄마가 계속 따뜻한 사랑 종현에게 많이 줄거야. 우리아들 많이많이 축하하고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예쁜 엄마가 썻어용^^'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진심을 더 긴 한글 편지로 보내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원래는 한글이 어렵고 속 썩였던 기억 많았어요. 하지만 검정고시 합격하고 나니 의미 남달라요. 더 긴 손편지도 애들한테 써줄 거고… 시어머니가 쓰던 사투리도 배울래요! '뭐라고요?' 안 하고 '알았당께' 할래요!"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부고] 포틀랜드 영락교회 백일성 장로 별세
- [하이킹 정보] 시애틀산우회도 내일 거북이마라톤 참가키로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시애틀산악회 6일 거북이마라톤 참가
- 대한부인회 11일 간병인 모집행사 "시간당 21.17~24.28"
- 생활상담소, 시애틀시 범죄피해자기금 전담기관으로 선정
- 영오션 한국산 광어회와 참돔회 판다
- UW서 해녀 전시회 열린다
- "시애틀 한인여러분 운동도 하고 선물도 받고"
- 김원준 작가 ‘6ㆍ25 및 DMZ사진전’오리건서도 큰 인기
- [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양심과 구원(2)
- [서북미 좋은 시-정혜영] 공작단풍 그 이름을
- 오리건주와 워싱턴주 목회세미나 및 말씀사경회 열린다
- 오리건주서 6ㆍ25 제74주년 기념식 열려(+화보)
- 시애틀영사관 한국국적 일반행정직원 채용한다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시애틀산악회 29일 토요정기산행
- 이장우 대전시장 명예 시애틀한인회원 됐다(화보)
- US메트로 김동일 행장 임기 3년 연장키로
- US메트로은행 '미 전국 중소은행중 실적 탑 20'에 들어
- 이장우 대전시장, 스타벅스 관계자 만나 '로스터리 대전건립 추진'
- 재미 한인 탁구인들의 축제 성황리에 열렸다
- KWA대한부인회 타코마아파트 다음달 신청받는다
시애틀 뉴스
- 워싱턴주 삼진법 부작용 개선되지 않았다
- 워싱턴주 불체자도 부동산 에이전트 면허 가능해진다
- 시애틀교육구 교사봉급은 올리고 직원 봉급은 낮추고
- 워싱턴주 생계비뿐 아니라 장례비도 많이 올랐다
- 린우드 얼더우드몰 왜 이러나…또 총격 13살 소녀 사망
- 시택공항 중국,대만, 영국 등 국제노선 대폭 늘어나
- 아마존 창업자 베이조스, 주가 급등하다 50억달러어치 팔기로
- 워싱턴주도 어린이인구 줄어들고 노인들은 늘어났다
- 미국 우표값 또 오른다…14일부터 73센트로
- 재외국민 휴대폰 ‘모바일 재외국민증’ 도입한다
- 부산·울산항~시애틀·타코마항 세계 첫 무탄소 운항
- 미 프로아이스하키 사상처음, 시애틀 여성 코치 선임
- 독립기념일인 내일부터 시애틀에 폭염 닥친다
뉴스포커스
- "시청역 참사 구속영장 불가피한데"…경찰의 복잡한 속내 왜?
- '읽씹 논란' 韓 "연판장, 협박 전화" vs 元 "대통령 흔드는 해당행위"
- "김경율 발언 가슴 아프지만"…명품백 사과 문자 내용 보니
- 이재명 부부 소환통보에 검사 탄핵 후 '망신주기 맞대응'?
- 삼성전자 노조 "사흘 파업, 피해 클 것…다음은 무기한 총파업"
- 정부, 8일 미복귀 전공의 처분방안 발표…눈치보던 병원 '내용증명' 발송
- 尹, 해병 특검법 미 순방 후 거부권…임성근 불송치 '주목'
- 수출호조에 하반기 경제 '청신호'…"금리인하 시점이 반등폭 좌우"
- 홍명보 감독, 10년 만에 축구 대표팀 지휘…외인 후보자 협상 결렬
- "허웅은 걸X, 여자에 미친 X…드리블하는 애가 주먹질을" 충격 제보
- 한동훈 "문자 논란, 당무개입이라고 생각…김건희 여사 결국 사과 안해"
- "외상의학 큰 타격…'기피 과' 될테고 둔감해질까 두려워"
- 유승민, 읽씹 논란에 "김건희, 왜 한동훈 허락받나…본인이 사과하면 될 일"
- 서울역 인근서 고령 운전자 '인도 돌진' 2명 부상…'급발진 여부' 조사
- ‘또 돈다발’…울산 아파트 화단서 2500만원 추가 발견
- "민족은행이라더니"…농협인들 조선 총독 별장서 만찬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