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김윤선] 삭제된 메시지
- 21-10-03
김윤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삭제된 메시지
그날 협회 행사는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코로나 시대의 별스런 만남의 현장이지만 다들 꽤 익숙해졌다. 화면을 죽 돌아보니 손님 중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행사가 끝나고 감사 인사도 할 겸 안부를 전했다. 곧이어 간단한 회신이 왔다. 그런데 한참 지난 후에 보니 또 하나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얼굴이 좋아 보였습니다.”
쿡, 웃음이 났다. 역시 숙맥이다. 하긴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도 이처럼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는 그의 숙맥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왕이면 좀 듣기 좋게 말하지. 활기차게 보인다던가, 아니면 운동하시나요? 건강해 보입니다, 라던가. 환심을 살만한 말이 오죽 많을까.
내가 듣기 민망한 말 중 하나가 얼굴이 좋아 보인다는 말이다. 나는 얼굴이 살찌다. 뭐 얼굴뿐일까마는. 게다가 얼굴형이 둥글다. 단체 사진 찍을 때마다 투실한 얼굴이 퍽 난처하다. 아닌 게 아니라 코로나를 핑계로 집에만 있다 보니 체중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메시지 위 칸에 다른 메시지 하나가 삭제되어 있다. 무슨 말을 했길래 지웠을까. 순간 상상이 꼬리를 문다. 다음 메시지로 상상하건대 이렇게 적지 않았을까.
“살쪘군요. 얼굴이 달덩이 같습니다.”
얼마 전에도 그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우연히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셨던 허만길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다. 지금은 은퇴하셨지만, 그간 선생님은 교단에 있으면서 주경야독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으셨고 최현배, 허웅 선생님의 뒤를 이어 한글학회에 맥을 이었으며 시인으로 활동하시는 분이다. 한국과 중국이 국교도 수립되지 않은 때, 표적 없이 중국인이 사는 상해 임시정부 자리를 찾아내어 자리 보존 운동을 펼치셨다.
나는 어릴 때도 선생님을 존경했지만, 오늘에 이르러서는 문학 활동을 같이하게 돼서 선생님이 더 반가웠다. 내 작품수록이 된 책이 나오면 보내드리고 안부를 전하다 보니 선생님과 카톡이 잦다. 한번은 한국일보에 게재된 글을 보내드렸더니 미국에서 한국일보가 교민들이 아끼는 신문임을 안다면서 반가워하시며 격려해 주셨다. 그런 얼마 뒤 삭제된 메시지 하나가 떴다.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맞춤법이나 어법에 틀린 말을 지적하셨을까, 아니면 산만한 구성수법을 나무라셨을까, 그도 아니면 이민의 땅에서 작가의 역할에 대한 말씀이었을까. 나는 슬쩍 모른 척했다.
어릴 때 <셜록 홈즈> 전집을 재미있게 읽었다. <괴도 루팽>에 빠지기도 하고,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오리엔트 특급열차> 같은 책도 읽었는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로 가득한 재미는 무더운 여름의 빙수였다. 김성종의 추리소설에도 한동안 빠져 지냈다. 오늘 삭제된 메시지에 촉수를 세우는 건 그 영향력 때문인지 모르겠다.
세상에 완전범죄는 없다고 한다. 공소시효를 훌쩍 넘긴 뒤에도 밝혀지는 범죄를 보면 말이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어찌 흔적이 없을까, 초동수사에 실패한 때문인지 모른다. 수천 년이 지나고 발굴된 시신도 주인을 찾아내는 시대가 아닌가. 삭제된 메시지 또한 지금은 사라진 문자라 해도 다음 어느 세대엔 그 문자들을 전부 복구해서 주인에게 되돌려 줄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에서 시민권을 획득하면 한국의 주민등록은 말소된다. 한국인으로서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다. 한국에 입국할 때도 외국인으로 입국한다. 한국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작 머리카락 색은 여전히 검은색이고 눈은 갈색이다. 피부는 유색이고 말도 한국어에 능하다. 한글로 된 책을 읽고 한글 검색기를 이용한다. 시민권자 한국인치고 자신이 한국인이 아니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작 한국에서는 흔적을 지웠는데 본인은 여전히 해바라기다. 삭제된 메시지다.
가끔 삭제된 메시지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슬쩍 지워버린 말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질책보다 사랑을 느낀다. 받는 이의 마음을 다칠세라 보낸 이의 고심이 엿보이는 공간이다. 그건 그만큼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의 삭제된 메시지가 말한다.
“누님, 사랑해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서북미 좋은 시-정혜영] 공작단풍 그 이름을
- 오리건주와 워싱턴주 목회세미나 및 말씀사경회 열린다
- 오리건주서 6ㆍ25 제74주년 기념식 열려(+화보)
- 시애틀영사관 한국국적 일반행정직원 채용한다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시애틀산악회 29일 토요정기산행
- 이장우 대전시장 명예 시애틀한인회원 됐다(화보)
- US메트로 김동일 행장 임기 3년 연장키로
- US메트로은행 '미 전국 중소은행중 실적 탑 20'에 들어
- 이장우 대전시장, 스타벅스 관계자 만나 '로스터리 대전건립 추진'
- 재미 한인 탁구인들의 축제 성황리에 열렸다
- KWA대한부인회 타코마아파트 다음달 신청받는다
- 시애틀-대전 자매도시 35주년 기념행사 화려했다(영상,화보)
- "한국일보 청암장학생 신청하세요"
- 시애틀 한인중고생 위한 SAT캠프 열린다
- 시애틀타임스 “양희영, 은퇴하면 안될 실력자다”
- [영상] 샛별예술단 베냐로야홀서 공연 펼쳐
- 지소연 선수, 시애틀한인회 명예회원됐다(+영상,화보)
- 페더럴웨이 한국정원 ‘한우리 정원’ 10월 개장한다(영상)
- 미주한인의 날 워싱턴주 신임 이사장에 김성훈, 대회장 김필재(영상)
- [시애틀 수필-김윤선] 찬란한 빛의 밤
- [신앙칼럼-최인근 목사] 인생은 결단입니다!
시애틀 뉴스
- 아번 경비행기 추락원인도 "부품조립 잘못"
- 시애틀지역 버스와 경전철, 스마트폰으로 요금낼 수 있다
- 맥주 원료 홉(Hop)재배 워싱턴주 업자들 "힘들다 힘들어"
- 아마존 20달러 이하 중국 직구몰 오픈한다
- 페더럴웨이 I-5 달리던 차량서 살인 사건발생
- 시애틀서 집사려면 이렇게 힘들다니....현재 중간소득 7배 벌어야
- 보잉 '737맥스 사고'관련, 당국과 협의 막바지에 들어섰다
- 보잉 유인우주캡슐 ‘스타라이너’ 수리중이다
- 결국 워싱턴주 아번경찰관 살인죄 평결 받았다
- 워싱턴주 유명 요리사의 '파격행보' 화제다
- SK 최태원회장, 시애틀 와서 MS CEO만났다
- 미 대법원, 아이다호 응급 낙태 허용…바이든 정부 '작은 승리'
- 아마존도 사상 최고가 시총 2조달러 돌파했다
뉴스포커스
- 서울시청역 교차로 교통사고 최소 9명 사망…운전자, 급발진 주장
- 고대의대 교수들, 12일부터 무기한 휴진…"진정성 있게 대화 응해야"
- '반도체·車'가 견인한 상반기 수출, 9.1% 늘어난 3348억불…'역대 2위'
- 류호정 "누굴 먹어? 우습고 빡친다… 의원 때 나도 성희롱 당첨"
- "호텔서 때리고 낙태시켰잖아" "내가 언제?"…허웅, 전 여친 녹취록 공개
- '천만 베이비부머' 은퇴에 성장 추락?…고용연장 땐 타격 '반절'
- '4년만의 신차' 잔칫상 덮친 '집게 손'…르노코리아 "진상조사"
- 가스요금 7월1일자 인상 보류…이달 중 오를 가능성은 '여전'
- KT, AI 역량 강화한다…엔씨소프트 출신 신동훈 상무 영입
- "한 대학에서 4년제·전문대 과정 다 운영한다"
- '尹 탄핵 청원' 열흘만에 70만명 돌파…오늘만 3만명
- '김만배와 돈거래' 前 언론사 간부 사망…檢 "깊은 애도"
- "아리셀 대피로에 배터리 쌓여 탈출 못했다"…경찰, 안전 위반 집중조사
- 고물가에 1분기 가구 지출 2.6조 증가…먹고 자는데 1.3조 더 썼다
- 추경호 "화성 화재, 부끄러운 후진국형 사고…안전불감증 대책 필요"
- 최태원 SK회장 "AI 밸류체인 리더십 강화…2026년까지 80조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