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김준] 누가 살인자인가 <하>
- 21-09-26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누가 살인자인가<하>
지난 번에는 인간이 적극적으로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생명을 잃게 하는 경우를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서만 죽음을 야기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소극적인 길을 통해서도 똑같은 결과를 낳는 일이 허다합니다.
성경에는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강탈 당하며 매를 많이 맞은 상태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때 강도에게 옷을 벗기우고 매를 맞아 거반 죽게 된 그 사람을 보고 제사장도 피하여 지나갔고, 레위인도 피하여 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죽어가는 사람에게 폭언을 하거나 폭행을 가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 즉 베풀어야 할 도움을 주지 않음으로써 그 사람을 죽을 수 있는 상태로 방치해 두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작위로써 만이 아니라 부작위, 즉 유기함으로, 방치함으로, 방관하고 외면하고 무관심함으로써 생명을 잃게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간의 생명을 물리적으로 빼앗지 않는 것만으로는 “살인하지 말라”라는 그 계명을 온전히 이행하였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생명을 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생명체가 생명체로써 활기있게 생활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도움을 베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굶주려 죽어가는 사람에게 내가 베풀 수 있는 식품을 나눠주지 않는 것도, 추위로 얼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의류를 나눠주지 않는 것도 유기로 인한 살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고독과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의 격려를 해주지 않는 것도,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채 허무와 절망에 빠져 있는 영혼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구원의 진리와 영생할 소망을 심어주지 않는 것도 사랑을 외면한 정신적, 영적 살인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도시에 사는 로레이도라는 사람은 그의 친구가 조각한 한 소년의 조각상을 그의 집안에 세워 놓으면서 조명을 설치했습니다. 처음에는 조명이 마루바닥에서 윗쪽으로 향해 그 소년의 얼굴을 비추도록 설치한 후 뒤로 물러서서 그 소년상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년이 마치 괴물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곧 조명의 위치를 바꾸어 그 조명이 천정 위에서 소년의 얼굴을 향해 내려 비추도록 조정한 다음 뒷쪽에서 그 조각상을 바라본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소년이 마치 천사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으로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인간을 단지 세속의 눈으로 바라볼때 어떤 사람은 열등한 인간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바로 전에 말한 괴물처럼 보일런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을, 그 누구를 막론하고, 하나님이 비추어주시는 사랑의 광선을 통해서 보게 되면 그 사람에게서 거룩함을 발견하게 되고 모든 사람이 다 신성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인명을 해치지 말아야 함은 물론 그 생명이 활기차게 생존하도록 그리고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의 건강에 해를 끼친 일, 내 유익을 위해 남에게 경제적으로 피해를 준 일, 남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유린한 일, 소외되고 낙오된 불행한 이웃들에게 무관심 했던 일 등, 직접 혹은 간접으로, 작위 혹은 부작위로, 알게 혹은 모르게 얼마나 이웃들의 육신과 정신과 영혼을 해치며 살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볼때 우리 중에 누가 감히 ‘살인하지 말라’는 이 계명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으며 누가 감히‘난 아무죄도 없다’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우리 중에는 인명을 해치는 일에 연루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단 한사람의 의인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기독교 신앙은 이처럼 나 자신을 “죽음으로 죄값을 치러야 할 죄인”임을 뼈속 깊이 자각하고 통회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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