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양심과 구원(2)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양심과 구원(2)


S는 그가 저지른 그 악몽 같은 사건을 잊으려고 주거지까지 옮기면서 노력했지만 효력이 없었습니다.

S에게는 결혼한 아내와 3살난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자기 아내를 보기가 부끄러웠고 어린 딸의 맑은 눈동자를 볼때마다 그 귀여운 딸에게 평생 따라 다닐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무서운 낙인을 생각하면서 터질듯한 가슴을 움켜쥐고 괴로워했습니다. 조용히 어린 딸과 단 둘이 있을 때마다 그는 그 철모르는 딸을 붙들어 안고 하염없는 눈물을 쏟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은 그의 아내가 밖에 나갔다가 집으로 들어오는데, 방안에서 남편의 흐느끼는 울음 소리와 함께 알아 듣지도 못할 딸에게 남편의 탄식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가 걱정마라. 내 죄값을 절대로 너에게 물려주지 않으마. 절대로! 절대로!”

그 후에도 그는 딸을 품에 안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그 말을 되풀이하곤 하셨습니다.

“걱정마라. 내 죄값은 절대로 너에게 물려주지 않으마!"

S의 아내는 여러 면으로 남편의 마음을 위로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고 남편의 괴로워하는 심정은 날이 갈수록 그 정도가 더욱 더 심해지기만 하였습니다. 아내가 보는 남편의 심리상태는 더욱 엽려스러웠습니다. 

‘저러고도 저이가 정말 생을 지탱할 수 있을까?’

그렇게 연일 후회와 단식 속에 지내던 어느 날 S는 모처럼 장을 보러 외출을 하였습니다.

오후 5시경에 돌아온 남편의 손에는 보따리가 하나 들려져 있었습니다. S는 방으로 들어서면서 아내와 딸을 불러 방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S는 그가 들고 온 보따리 속에서 귀여운 딸에게 줄 고운 옷 한벌과 예쁜 인형과 몇 개의 장난감 그리고 아내에게 줄 고부인 한 켤레를 꺼냈습니다. 

아내는 뜻밖에 남편으로부터 받아든 고무신을 신어보면서 기쁨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고무신이 맘에 들고 소중해서 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도 허탈한 모습으로 한탄 속에 살아가던 남편이 이제 자기를 위해 선물을 사들고 올 만큼 여유와 안정을 얻게 된데 대한 안도의 기쁨이었습 니다. 이제는 남편에게 깊이 뿌리 박힌 그 죄의식도 조금씩 조금씩 사라져 머지 않아 옛날과 같은 밝고 쾌활한 남편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이 그녀의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하였던 것입니다.

어린 딸은 예쁜 옷을 입고는 너무 좋아서 인형과 장난감을 손에 들고 깡총 깡총 춤을 추며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웃음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얼마 동안 남편에 대한 고마운 생각을 하며 어린 딸의 기뻐 뛰는 재롱에 흠뻑 젖어 있던 아내가 갑자기 생각난듯 급히 일어서면서 망했습니다. “아 참! 여보, 많이 사랑하시죠? 저녁상 차례 올게요.”

그녀는 총총히 부엌으로 나가고 S는 사랑스러운 딸의 뛰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자기가 사다 준 그 옷이 그렇게 잘 어울리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과오를 저지른 사람인지, 아버지가 얼마나 무거운 고뇌의 짐을 안고 허덕이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마냥 즐겁기만 한 귀여운 딸의 눈망울은 호수처럼 밝았고 그 표정은 애기 천사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S는 천진난만한 그의 딸을 두 팔로 꼬옥 껴안았습니다. 아빠 품에 안긴 딸이 해맑은 웃음으로 아빠를 바라봅니다. S는 티없이 순진한 딸의 시선을 마주 대하기가 부끄럽고 두려웠습니다. 사람을 죽인 자신의 그 죄 많은 눈길이 어린 딸의 청결한 눈동자를 더럽힐 것만 같았습니다. S는 딸을 더욱 힘껏 껴안으면서 전에 하던 그 말을 또 되풀이했습니다. 

“내가 절대로 내 죄값을 너에게 물려주지 않으마!”(다음 갈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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