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미 좋은 시-정혜영] 공작단풍 그 이름을

정혜영(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공작단풍 그 이름을


해가 뜨지 않는 곳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온갖 이국어가 뒤섞이는 해안, 말이 씨앗이 되고 전쟁이 되고


한여름 밤,

금속성의 빛이 부서지고 폭풍우가 몰려온다

퓨젯사운드 항구의 어둠 속에서 길들지 않은 짐승들이 공중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


뒤에는 하얀 경찰차가

앞에는 태평양의 밤바다가 놓여 있다


아무리 일으켜 세워도 미끄러지는 말은 화살보다 빠르고 칼날보다 깊다

공작단풍 가지들은 하늘을 버리고 땅을 향해 뻗는다, 어둠을 움켜쥐려는 손가락같이


상처의 깊이는 ‘매우’, ‘가장’, ‘과연’, ‘그리고’ 따위의 낱말 속에서 나부낀다, 공작 깃털처럼 눈부신 단어들


공작단풍에게 누가 그런 이름을 지어주었나

눈앞의 바다, 눈앞의 폭풍우, 공작단풍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메두사가 되었다


그 계절엔 국적 모를 사람들이 폭풍우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온갖 언어들이 한꺼번에 쓸려나가고 정적이 찾아왔다 선착장 앞에서 시동이 꺼진 승용차 주위를 경찰차가 헛바퀴로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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