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염미숙] 메모리얼 벤치
- 24-06-16
염미숙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메모리얼 벤치
잠시 쉬어가려 벤치에 앉았다. 캠퍼스는 속속들이 초록이다. 퍼붓는 오월 햇살이 눈이 닿는 모든 것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학생들이 여러 방향에서 나타나 각자의 선을 그으며 사라진다. 선들은 너른 잔디밭 위에 여러 모양의 도형을 그려 넣는다.
“세상의 모든 진리를 향한 호기심으로 가득 찼던 그녀를 그리며.”
벤치 등받이에 새겨진 문구를 읽는다. 그녀는 하나의 문장으로 남아 있다. 남겨진 이들은 이 문장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고심했을까. 그녀가 내게 말을 건다면 어떤 말을 할까. 몇 안 되는 단어를 퍼즐로 삼아 나는 그녀의 모습, 언어와 성품을 상상해 본다. 아직 이 땅에 선을 그리고 있는 내가 그녀와 대화라도 나눈 듯, 벤치에서 일어섰을 때 나만의 비밀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낚시하러 가셨다(Gone for fishing).”
몇 걸음 걷다가 지난 해 낚시터에서 읽은 문구를 떠올린다. 낚시터로 애용되는 방파제 근처에 그 벤치가 있었다. 아마도 그곳이 고인이 자주 찾던 장소가 아니었을까. 돌로 만들어진 우직한 그 벤치는 소금기 섞인 바람이 불어도 눈비가 내려도 마냥 일렁이는 바다와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그는 수평선 너머로 낚시를 떠났다. 그리고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가셨다(Gone). 그 바꿀 수 없는 완료의 선언이 엄숙하게 귀에 울렸다.
“1915년 졸업생 일동”
광장(Red Square)으로 향하는 길, 저만치 이끼에 덮인 벤치가 눈에 띈다. 비바람이 돌마저 깎아버린 걸까. 새겨진 연도가 희미해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긴 세월 동안 캠퍼스의 벚나무들이 고목이 되어가고 새 건물이 들어서고 컴퓨터 전공이 생기고 학생 수가 늘었다. 지금 그들 모두는 이 땅에 없지만, 그들이 남긴 벤치는 1915라는 청춘을 100년이 넘게 품고 있다. 타박타박 걷다가 자꾸 뒤돌아본다.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그들의 청춘을.
“사랑받는 아들, 형제, 친구. 하늘에서 다시 만나요.”
로디가 흐드러지게 핀 광장을 지나 계단을 내려오다가 오른편에 놓인 벤치를 보았다. 새겨진 이름은 낯익은 성, 김(Kim)이다. 아직 낡지 않은 새 벤치다. 그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의 떠남은 급작스러웠고 불과 몇 해 전의 일이었다. 24살 젊은 나이에 떠난 그를 그리며 친구들이 마련한 벤치다. 보낸 이들은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언젠가 다시 만나길 바란다. 인사치레도, 폼 나게 이별하자는 말도 아니다. 다시 보자는 그 말은 슬픔을 덮는 소망이다.
주립대학 캠퍼스는 늘 젊음의 생기가 분출하는 곳이다. 젊음이 눈을 가렸을까. 오롯이 놓인 메모리얼벤치들을 분명 두 눈으로 보았지만, 늘 무심히 지나쳤다. 오늘 하나의 벤치를 만나고 나니 배턴을 넘기듯 벤치들은 또 다른 누군가를 연이어 소개한다. 어느새 캠퍼스는 먼저 떠난 이들로 가득하다. 그들도 오늘 나와 마주친 학생들처럼 허락된 시간 안에 자기만의 선을 그리며 지나갔을 테지. 미래의 언젠가 아직 오지 않은 세대가 내가 그린 선을 이렇게 먼발치에서 바라볼 수도 있으리. 오월 한낮, 초록이 넘실대는 항아리 안에 삶과 죽음이 바특하게 담겨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시애틀한인 설미영ㆍ최영화씨 시애틀아트페어 참가
- 대한부인회 청소년 아카데미 “신나고 즐거웠다”(영상)
- “손준호ㆍ김소현 시애틀공연 입장권 구입을”
- 시페어서 한국 색ㆍ소리ㆍ태권도ㆍ한글 제대로 알렸다(+영상,화보)
- [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성실
- [보험 칼럼] 병원 리퍼럴을 받았을때 확인해야 할 사항
- 창발 자선기금마련 테니스대회 대성황이뤘다
- ‘100세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시애틀 한인대상 무료강좌 또 열린다
- ‘역사 다큐’제작한 이재길 타코마한인회장이 말하는 한국 역사는?(영상)
- 타코마지역 한인 1세, 워싱턴주 보험감독원장 출마
- 시애틀 한인마켓 주말세일정보(7월 26일~ 7월 29일, 8월 1일)
- [하이킹 정보] 시애틀산우회 27일 2개 코스로 정기산행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시애틀산악회 27일 산행
- “한인 여러분, 반드시 유권자 등록 및 투표를”(영상)
- 대한부인회, 페더럴웨이서도 간병인 직업박람회연다
- <정정> 타코마서미사 방생법회 28일 열린다
- 워싱턴주 한인목회 1세대 송천호 목사 별세---쉐리 송씨 시아버지
- 시애틀한인회 “이번 주말 시페어 토치라이트 이렇게 참가”
- 한인생활상담소, 자원봉사자 모집한다
- 제79주년 광복절 시애틀 경축식 열린다
- 시애틀ㆍ벨뷰통합한국학교 유아원 개설한다…“등록 상담”
시애틀 뉴스
- 워싱턴주 5가구중 한가구 전기요금 200달러 돌려받는다
- 워싱턴주 헬스케어 안좋은 편이다
- 2024 시페어 토치라이트 퍼레이드 이모저모(+화보)
- 12년간이나 시애틀시장했던 찰리 로이어 별세
- 워싱턴주 여성들에게 "연방대법원 신뢰하냐"고 물었더니
- 시택공항 주변 주택 방음대책 ‘허술’하다
- '전국 최악'이었던 시애틀 운전자들 전국 3위로 갑자기 껑충
- 워싱턴주서 도둑 자주 맞으면 보험 안받아준다?
- MLB최하위 '물방망이' 매리너스, 올스타 출신 아로자레나 영입
- 워싱턴주 컬럼비아강에 준치 대풍년 ‘물 반 준치 반’
- 시애틀지역 수상택시 이용객 부쩍 늘어났다
- 시애틀서 7살짜리가 강도짓을 했다고?
- 워싱턴주 자본이득세(Capital Gain Tax) 폐지될 가능성 크다
뉴스포커스
- 경찰, '시청역 참사' 원인 '운전 미숙' 결론…당시 시속 107㎞
- '티메프 사태' 구영배 자택 등 전방위 압색…400억 횡령(종합2보)
- 한동훈 "당직인사, 잘 진행"…친윤 정점식, 사퇴요구에 "답 않겠다"
- 큐텐 구영배 "위메프 대표가 알리에 매각 추진…답답" 심경 토로
- 이진숙, 출장비 1700만원 현금받고 법카 2300만원 중복 사용
- 韓 수출 7000억 달성 '순항'…중국 경제 둔화·미국 대선 리스크는 '변수'
- "직접 나서라" 이재용 집 몰려가 총파업 책임 따진 삼성전자 노조
- 전공의 7645명 모집에 104명 지원…"8월중 추가 모집"
- 尹, 노동부 장관에 김문수…"노동개혁 완수 적임자"
- "이진숙 취임 첫날 방송장악"…민주, 내일 오전 탄핵안 발의
- "화살 어디 갔어?"…김우진 옆 '1점' 쏜 차드 선수, 뭉클한 사연
- "CCTV 속 악마의 웃음 경악"…이웃에 무료 나눔한 우산 다 쓸어간 여성
- 검찰, '특혜 채용 의혹' 서훈 전 국정원장 무혐의 처분
- 전공의 모집 마감 D-day…빅5도 지방병원도 지원자 '한 자릿수'
- 김만배·신학림 혐의 모두 부인…판사, 송곳 질문에 검·변 '식은땀'
- 남북 탁구 셀피, 프랑스에서도 화제…"센세이션 일으킨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