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양심과 구원(1)
- 24-06-16
김 준 장로(종교칼럼니스트)
양심과 구원(1)
기름진 들녁에는 철따라 오곡이 무르익고 나지막한 야산들은 향기로운 소나무들로 둘려있는 평안북도의 어느 평화로운 농촌 마을, 불과 50여호의 초가들이 옹기종기 들어서 있는 그 마을은 언제나 아름다운 인정이 넘치는 축복받은 고장이었습니다.
산비탈에 자리잡은 아담한 초등학교 건물에서는 이 마을의 희망인 어린 새싹들이 글을 읽고 노래를 부르고 달음질치며 농민들의 보람으로 꽃피어 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학교에 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P라는 교사가 새로 부임해왔습니다. 나이는 젊지만 무척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부락 어른들에 대한 예의 범절도 잘 갖추어 학부모들의 사랑과 기대를 받으며 하루하루 교무에 열과 성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저녁이었습니다.
P교사가 학교 사택 앞 길가를 산책하며 더위를 식하고 있는데, 그 부락의 S라는 청년이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걸음 걸이로 보아 어디에서인지 술을 좀 마신듯한 자세였습니다. P교사는 S를 전부터 잘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로 다가가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니까 이렇게 걸어다니지 않소”
S는 약간 혀꼬부라진 소리로 어딘가 불만스러운 어조로 대꾸를 하였습니다.
“약주를 좀 드신것 같은데 조심해서 가세요.”
S는 P교사가 하는 말에는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은 채 걸음을 멈추고 P교사를 못마땅한 눈으로 노려보다가 손가락을 P교사에게로 향하면서 말했습니다. “여보 P선생, 당신 말이야… 좀 배웠다고 날 무시하는것 아니야!”
P교사는 뜻밖에 당하는 일이라 뭐라고 말을 해야할 지를 몰라 머뭇 머뭇하고 있는데 S가 계속 말을 이었습니다.
“내가 다 알고 있어. 당신이 나를 무시하고 있는 줄을 내가 모를줄 알아?”
S는 그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농사일에 매여 사는 농부였습니다. 그는 남달리 두뇌가 명석했지만 학업을 계속할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언제나 불태우지 못한 향학열 때문에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신세를 늘 초라하게 느끼고 있던 때라 그날 저녁에 술이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P교사를 만나게 되자 그의 자격지심이 술주정으로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P교사가 S에게로 다가서면서 말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제가 S씨를 무시하다니요. 약주가 좀 과하신 것 같은데 어서 댁으로 돌아가시고 다음에 우리 다시 만납시다.”
S는 P교사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들고 있던 막대기를 들어 올리면서 말했습니다.
“만약 나를 무시하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고 이 몽둥이로 이렇게…”그러면서 그는 들어 올린 막대기로 P교사를 때릴 수도 있다는 몸짓을 하면서 무릎 아래 쪽으로 막대기를 휘둘렀지만, P교사는 S가 자기의 머리를 때리려는 줄 알고 몸을 숙이며 피하려다가 S과 아래 방향으로 휘두른 막대기에 급소를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S가 부랴부랴 P교사를 붙들고 피를 닦아주며 돌보았지만 P교사는 불과 몇 분만에 그만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어이 없는 살인 사고로 평화롭고 고요하던 그 마을은 오랫동안 술렁거렸고, 실수로 사람을 죽인 S는 과실치사 죄로 입건되어 재판을 받은 후 2년간의 형기를 마치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S는 출옥한 후 낯을 들고 마을에 나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거의 숨어서 살다시피 하다가 몇달 후에는 결국 수십리 떨어진 다른 부락으로 이사를 가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감에 따라 그가 저지른 그 엄청난 과실도 사회에서 차츰 잊혀져 가고 있었으나 S만은 그가 저지른 그 끔직한 과실로 인한 죄책감이 한 순간도 그에게서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다음 칼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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