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김철훈 목사 소고(小考-4)
- 24-06-03
김 준 장로(종교칼럼니스트)
김철훈 목사 소고(小考-4)
그 편지 내용이 자기(김철훈 목사)를 서울에 체류시키라는 것인데 그런 줄도 모르고 김 목사님은 X목사님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편지를 읽은 X목사님은 김 목사님에게 편지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한 후 김 목사님에게 고당 선생의 뜻을 따라 서울에 그대로 체류하시도록 간곡히 부탁을 하였습니다.
X목사님의 칼을 들은 김 목사님의 일가에 가벼운 미소가 스치고 지나갈 뿐 그 분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어떠한 결단을 내려야할 지 망설이는 기색도 없었고 그저 의연한 태도 그대로 였습니다. 김 목사님은 눈을 지긋이 감고 말없이 머리를 숙였습니다. 그러한 김 목사님을 바라보던 X목사님의 재촉이 이어졌습니다.
“김 목사님, 꼭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네? 고당 선생의 뜻에 따르시는 거지요?”
아무 말없이 듣고만 있던 김 목사님이 잠시 후 머리를 들고 엄숙하면서도 결연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미 주님을 한번 배반한 몸입니다. 주님을 두번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목사님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고 두 주먹에는 힘이 주어져 있었지만 목사님의 눈에는 어느덧 이슬이 맺혀 있었습니다. 공산정권의 탄압을 피해 탈북하는 일이 왜 주님을 배반하는 일이겠습니까. 공산 치하에 있는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떳떳이 택할 수 있는 그 길인데도 이미 신사참배로 주님의 뜻을 따르지 못한 김 목사님의 그 예리한 신앙 양심이 누구에게나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탈북조차도 주님에 대한 배반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김목사님은 결국 북한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날로 더해지는 북한의 종교 탄압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교회를 지키시다가 1949년 6월 어느 날 목사님은 공산 당원들에게 연행되신 후 소식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후 사모님 연금봉 여사는 3남매를 데리고 남하하셔서 산정현교회 재건에 헌신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필자는 김목사님에 관하여 들은 대로 서투른 필치로 몇줄 적어 보았지만, 김목사님이 아니고서야 신사참배를 거부하시다가 당하신 그 혹독한 고문의 현장을 누가 어떻게 다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김목사님이 아니고서야 가정과 교회와 민족을 위해 지워진 사명과 역할을 바라보며 신사참배를 받아들이기까지 겪었을 그 참담한 고뇌를 누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김목사님이 아니고서야 강단에 다시 설 수 없노라고 통곡하시던 그 처절한 가책의 고통을 누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김목사님이 아니고서야 X목사님의 권유와 고당 선생의 뜻을 거부한 채 서울을 떠나 다시 북으로 향하시던 그때의 그 심정과 그 숭고하신 순교의 발걸음을 누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언젠가 하늘나라에 가서 목사님을 직접 만나 뵙지 않고서야 목사님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최후를 마치셨는지 누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몇번이고 목사님을 머리에 떠올리며 목사님의 처지에서 생각해보고 느껴보려고 노력했지만 무모한 일임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목사님의 숭고하시고 거룩하신 순교의 정신을 훼손시킨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면서 하늘나라에 계실 목사님께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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