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김철훈목사 소고(小考-3)
- 24-05-20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김철훈목사 소고(小考-3)
형사의 설득을 듣고 있는 동안 목사님의 눈에는 예배당을 가득 메운 신도들의 눈망울과 가족들의 모습이 교차하였고 귀에는 신도들의 우렁한 찬송소리와 형사에게 끌려가며 부르던 아이들의 “아버지” 소리가 또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그후로 그들은 목사님을 더 이상 고문도 하지 않았고 그야말로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목사님도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목사님이 석방되었다는 소식은 곧 온 교인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주일 날은 여느 때보다 더 많은 교인들이 교회에 운집하여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흥분과 기쁨에 모두가 들떠 있었습니다.
11시 예배시간이 다가오자 교인들은 모두 긴장된 마음으로 강대상을 바라보며 목사님이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배 시간이 10분이나 지났는데도 목사님은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15분이 지나자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연세 많은 장로 한 분이 사택으로 들어갔습니다. 11시 30분 가까이 되어 또 다른 장로 두 분이 무슨 일이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사택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또 10여분이 흐를 때 였습니다. 사택에서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방안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들어간 장로님 한 분이 목사님에게 어서 나오셔서 예배를 인도하시라고 부탁을 드리자 목사님은 긴 한숨을 내쉬시면서, “이제 나는 예배를 인도할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시면서 시작한 흐느낌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던 것입니다. 교회 중진들이 사택 가까이로 모였습니다. 방안에서는 울음소리가 점점 더 커지더니 드디어 대성통곡으로 변하였습니다.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터뜨린 그칠줄 모르는 울울바다였습니다.
그분들의 통곡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모두가 다 짐작했지만 그 일에 대하여 누구 하나 일언반구 언급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예배는 목사님 없이 장로님의 인도로 성경 읽고 찬송 부르고 예배당이 떠나갈 듯한 통곡의 기도로 끝냈습니다.
그후 김철훈 목사님은 그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를 섬기기 시작한 지 약 1년 후에 8.15 해방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광복의 기쁨도 잠시 뿐, 공산정권이 들어선 북한은 하루가 다르게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졌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을 포함한 수 백만에 달하는 북한 주민들이 탈북하여 남한으로 넘어오고 있었습니다.
당시 민족의 지도자로 추앙을 받던 고당 조만식 선생은 그 분의 동지들이 선생의
신변이 위태로울 것을 예견하고 남한으로 피신하시도록 육로와 해로의 길을 다 준비해 놓았지만 고당 선생은 끝내 그곳에서 북한 동포들과 생사를 같이 하시겠다는 각오로 자신의 모발을 잘라 봉투에 넣어 사모님께 주시면서 남하하라고, 그리고 유사시에 그 모발을 장례에 대신 이용하라고 권하시고, 자신은 그곳에 머무시던 때였습니다
고당 선생이 보시기에, 대부분의 교역자들이 다 남하(탈북)하는데, 장래가 촉망되는 김철훈 목사님은 남하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시고 김 목사님께 남하하실 것을 종용했지만 김 목사님은 그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고당 선생은 김 목사님을 구하기 위한 지혜를 짜냈습니다.
즉 김목사님에게 서울로가서 X라는 목사님을 만나 고당 선생이 쓴 편지를 전해줄 것과 그 밖에 두어가지 부탁도 함께 드렸습니다. 그때만해도 38선을 넘나들기가 과히 위태롭지 않던 때라 목사님은 고당선생의 편지를 가지고 서울로 가서 X목사님을 만나 그 편지를 전해드렸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대강 이러했습니다.
“X목사님, 이 김목사님은 북한에 있으면 앞으로 절대로 안전할 수가 없습니다. 남하하시도록 권했지만 들으시지를 않습니다. X목사님이 어떤 방법으로든지
김 목사님을 그곳에 잔류하시도록 해주십시오. 사모님과 가족들은 곧 그곳으로 가시도록 하겠습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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