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김철훈 목사 소고(小考-2)
- 24-05-06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김철훈 목사 소고(小考-2)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를 부르는 아이들의 울음 소리가 계속 들려 왔습니다. 목사님은 본능적으로 혈육을 향하여 움직였습니다. 철창문 쪽으로 기어가고 있을 때 목사님은 비로소 자신이 죽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육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있는 힘을 다하여 아이들을 향해 기어 갔습니다. 간신히 철창 문 가까이에 이르자 형사들은 두 아이의 손을 끌고 저 멀리로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끌려가면서도 뒤돌아보며 부르는 “아버지!” 소리의 여운을 남기면서 그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은 마치 꿈을 꾼 것 같은 착각에 빠졌습니다. 아이들이 매어 달려 있던 철창 쪽을 멍하니 넋을 잃고 바라보던 목사님은 맥없이 바닥에 머리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였습니다. 목사님을 취조하던 형사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목사님을 부축하여 의자에 앉혀 놓았지만 기력이 쇠잔한 목사님은 머리를 숙인 채 허리는 앞으로 굽혀졌습니다. 형사는 따뜻한 차를 한잔 가져다가 탁자 위에 놓고 목사님에게 마시라고 권했으나 목사님은 찻잔을 들 기력마저 없었는지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형사가 잔을 들어 목사님의 입에 대어 드리자 두어 모금 마시고는 입을 다무셨습니다.
목사님을 한참동안 노래보고 있던 형사가 뜻밖에도 친근한 어조로 목사님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김 목사, 아이들을 봤지요? 애들이 참 똑똑하던데요.”그말을 들은 목사님의 눈 앞에 두 아이들의 모습이 스쳐갔습니다. 그리고는 괴로우신듯 머리를 가볍게 흔드셨습니다.
“김 목사, 당신도 저 두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지요? 사랑한다면 저들을 행복하게 해줄 책임과 의무가 당신에게 있지 않겠소? 설마 당신은 저 아이들이 고아가 되도록 어리석게 처신하지는 않을 줄 아는데…”
그 순간 목사님의 얼굴에 가벼운 경련이 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이 또
보이지 않을까 하여 간신히 눈을 떠보았지만 매서운 형사의 모습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목사님의 반응을 본 형사는 자기가 하고 있는 말을 목사님이 모두 잘 듣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는 다시 말을 계속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당신이 믿고 있는 하나님을 믿지 말라, 예수를 믿지 말라, 그러는게 아니란 말이오. 다만 우리 정부가 황국신민에게 요구하는 국민 의례에 협조해달라는 것뿐이요. 신사에 참배를 한다는 것은 국민으로서 국가의 제도와 법 질서에 따라야 할 여러 가지 일들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거란 말이오.”
형사가 잠시 말을 중단하고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목사님의 기색을 예리한 눈초리로 살피고 나서 또 말을 이었습니다. 형사의 어조는 다시 차분히 가라앉은 온화한 말씨였습니다.
“김 목사, 당신은 지금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 거요. 지금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소, 당신의 두 아이들,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당신의 목회를 기다리는 수 많은 교인들, 그리고 아직도 새파란 당신의 그 아까운 젊음을 모두 다 포기하고 무엇을 얻겠다는 거요? 당신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요. 지식과 학문, 당신의 지혜와 인격, 그리고 당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경륜들은 다 미래를 위한 준비가 아니였는가 말이오. 그렇게 값진 당신의 그 귀한 가치를 아무 것도 아닌 국민의례라고 하는 의식 하나 때문에 희생시킨다는 것은 크나 큰 오산이요 착각이 아니겠소? 나는 정말 당신을 아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요. 다시 한번 깊이 숙고해보고 그 착각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겠소. 그래서 내일이라도 당신을 그토록 사랑하며 기다리는 두 아이와 아내 그리고 교인들 곁으로 가서 당신에게 맡겨진 생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당신이 믿는 신의 뜻이 아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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