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전병두 목사] 어머님께 드리는 선물
- 21-05-24
전병두 목사(오리건 유진중앙교회 담임)
어머님께 드리는 선물
제이씨가 미국에 입국한 때는 초등학교 4학년 때였습니다. 26년 전 입니다. 하지만 그 세월은 긴장과 갈등이 날줄과 씨줄처럼 얽힌 날들이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에서 보냈던 초등학교 3년간의 시절은 학교 친구들과 자유롭게 보낸 날들이란 기억으로 남았을 뿐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안내로 미국 초등학교 교실에 들어가서 급우들을 처음 만난 날은 마치 먼 하늘을 날아 별 천지 학교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루 하루 학교 생활이 계속되면서 조금씩 적응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와 친구하자는 급우도 있었고 수업시간에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는 표정만 지어도 선생님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곤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말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은 일 주일에 한번 씩 어김없이 찾아오는 주일 날 모이는 교회당이었습니다. 한 주간동안 가족 외의 한국 사람 만나기가 어려웠지만 한국 교회 마당만 들어서면 우리 말로 인사하는 소리가 유난히 반가왔습니다.
한국 말로 부르는 찬송도 정겨웠습니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우리나라 말로 전해 주는 성경 이야기는 이해하기가 아주 쉬웠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제이씨 가정은 잔칫집 분위기였습니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까지 우리 말로만 생활하던 아들이 미국 아이들 틈에서 초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중학교로 진학한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나 봅니다. 새벽마다 학교 생활을 위하여 기도해 주신 어머님의 기도가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중학교 생활은 초등학교에 비하면 훨씬 수월하였습니다. 선생님의 말이 제법 귀에 들어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지곤 하였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영어가 차츰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가정과 교회에서는 우리 나라 말로 대화를 나누지만 학교에 들어서면 영어로만 의사 소통을 해야하는 두 언어의 생활이었지만 미국 생활이 차츰 익숙해 갔습니다. 이제는 미국에서도 살만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늘 불안한 마음으로 자신을 쳐다 보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일품이었습니다. 이민을 와서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한 어머니는 오랜 기도와 고심 끝에 시내에 한국 식당을 개업하기로 하였습니다. 유진 시내에 손님을 모시고 갈 만한 한식당이 없던 때라 어머니가 직접 요리한 한식은 그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성공의 보장도 없이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하나님은 어머니의 사업에 축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확장될수록 어머니의 어깨는 무거워졌습니다. 종업원이 나타나지 않는 날이면 어머니의 긴장감은 더욱 커지기만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굳건한 믿음의 장부셨습니다.
저녁 늦도록 일을 마치고 귀가하여도 새벽 4시가 되면 일어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새벽기도는 철저하게 교회에 가서 하였습니다. 몸이 피곤하고 힘들 때면 집에서 기도하시라고 말씀드려도 어머니는 흔들림없이 어둠을 뚫고 기도처인 교회로 향하였습니다.
소낙비가 쏟아져도, 눈이 와도 어머니의 새벽기도는 계속되었습니다. 눈이 쌓였던 어느 날 새벽은 집 앞 언덕 길에서 차가 미끌어 졌습니다. 어머니는 갑자기 당한 일에 크게 당황을 하면서 운전대를 꼭 잡고 ”주여!, 주여!“만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차는 길 가장자리에서 멈추어 섰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교회로 향하였습니다. 그 날의 경험은 어머니로 하여금 더욱 주님의 보호하심을 실감하게 하였습니다. 식당은 하루 하루 바빠만 갔습니다. 종업원 관리는 어머니에게 큰 부담이었습니다. 제이씨가 대학 생활을 시작하였지만 어머니의 사업은 계속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안스러워 보였습니다. 제이씨는 틈틈이 어머니를 도우면서 어머니의 이민 생활이 얼마나 피곤한 가를 몸으로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도 힘든 하루를 보낸 후에도 어머니의 표정에는 슬픔이나 불판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제이씨는 조금이라도 어머니가 편하게 일하시도록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도왔습니다. 종업원 관리도 맡아 드리고 부엌 안에서 음식 만드는 일이나 홀에서 웨이터 일까지 전방위적으로 팔을 걷어 부치고 뛰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제이씨의 장래를 생각하면 얼굴에 먹구름이 덮이는 듯 했습니다. 자녀 교육과 장래를 위하여 이민와서 고생한 분들의 이야기며 그 자녀들이 성공하지 못한 일들을 들을 때 마다 어머니의 염려와 불안은 점점 더 커져 가기만 하였습니다. 자신의 교육과 장래를 위하여 선택한 어머니의 이민 생활을 잘 아는 자신으로서 어머니에게 늘 빚진 마음이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 직장이라도 찾지 못한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문득 문득 들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이씨가 선택할 만한 일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어머니를 도와 식당의 메니저 역할을 잘 감당하는 일이 그가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식당에서 가까운 은행에서 제이씨를 면담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 은행의 최고 책임자는 식당 단골 손님이었습니다. 제이씨를 면담하던 그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식당을 방문할 때 마다 나는 당신의 하는 일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식당에서 손님을 대하는 친절한 모습과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에 오랫동안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은행에 와서 함께 일 할 생각은 없습니까?“ 어안이 벙벙해 하던 제이씨에게 그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지금 우리 은행은 소수 민족을 고객으로 영입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고 은행 업무를 확장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사업 개발과장으로 영입하겠습니다. 만일 우리 은행으로 오신다면 그간 식당에서의 메니저로 일한 기간을 경력으로 인정하여 그에 상응한 연봉을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제이씨가 은행에 입사하던 날 은행의 직원들은 새로운 사원의 입사를 축하하는 박수와 밝은 웃음으로 환영해 주었습니다.
어머니 날이 다가왔습니다. 제이씨는 어머니에게 무엇을 해 드려야 피곤을 들어드릴 수 있을까 고심하였습니다. ”어머니, 금년에는 어머니 날 선물로 무엇을 해 드릴까요? 맛있는 외식을 함께하실까요?“ 잠시의 침묵이 흐른 후 어머니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제이씨야 엄마가 원하는 일 한가지 해 줄 수있겠니?“ ”그럼요 말씀해 주세요...“ ”오늘 새벽기도회를 위해 교회에 갔더니 교회당 잔디밭을 깎을 때가 되었더구나. 괜찮으면 어머니 선물로 교회당 잔디를 좀 깍아 줄 수있겠니?“ 의외의 대답이었습니다. 제이씨는 주차장에 세워 두었던 잔디 깍기 기계를 들고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어머니께 드리는 선물이라는 생각에 발걸음은 더욱 가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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