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유세진] 다시 다닌 학교
- 23-11-13
유세진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다시 다닌 학교
학교 앞 도로가 꽉 막혔다. 서둘러 집을 나섰건만 시작종이 울리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아이들을 떨궜다. 혹시나 지각으로 체크될까 봐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빨리 뛰어 들어가. 딸과 아들은 듣는 둥 마는 둥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그제야 운전대를 부여잡은 손아귀와 조이던 심장이 스르르 풀렸다. 줄줄이 정체된 앞차들을 보아하니 밖으로 빠져나가기도 만만치 않겠다. 급할 게 없으니 한쪽 손을 팔걸이에 걸치고 학교 주변을 물끄러미 내다봤다. 그런데 번득 밀려드는 이 낯선 기분은 뭘까. 분명 종소리를 들었는데 뛰는 학생들이 하나도 없다니!
지각이다.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교문까지 전력 질주를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늑장 부리면 쇠창살 교문이 철커덩 닫히고 그 앞에서 몽둥이를 들고 서 있는 학주쌤을 맞닥뜨리고 만다. 만원 버스 안에서 이미 진을 다 뺐는데 학교까지 뛸 힘이 남아 있을까. 오늘따라 교복 치마가 정전기를 일며 걸리적거린다. 가방도 왜 이렇게 무거운지. 뛸 때마다 도시락 가방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 반찬 국물 새는 거 정말 싫은데... 가방 열어보기가 무섭다.
간신히 교문을 통과하고 교실 책상에 털썩 앉았다. 창문 너머 지각생들이 손을 들고 쪼그려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학주가 막대기를 손바닥에 내리치며 학생들을 겁준다. 저들 사이에 있었다면 오늘 하루는 완전 공치는 거다. 공부할 게 산더미인데 이미 컨디션은 엉망이다. 야자까지 어떻게 버티나. 언제까지 이렇게 헉헉대며 살아야 할까. 다른 세상으로 멀리 도망치고 싶다.
빡빡했던 나의 학창 시절 기억을 밀쳐내고 달라도 너무 다른 아이들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노란 완장을 찬 학생주임 대신 짙은 남색 제복을 입은 경찰이 문 앞에 서 있다. 빨간 머리에 화장하고 배꼽 보이는 옷을 입었다고 고등학생들을 선도하는 일은 절대 없다. 하루가 멀다하고 들어오는 협박 신고로 학교 안전을 살피기만도 바쁘다. 시작종이 울리면 외부 위협으로부터 보호를 위해 문을 닫지만 벨만 누르면 문은 바로 열린다. 지각생을 나무라는 건 알림 쪽지뿐이다. 무장경찰은 있어도 어디에도 인상 쓰는 선생과 체벌 같은 강압은 없다.
게다가 책상에만 앉아 있다 별 보고 하교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수업은 3시도 안 돼 끝나고, 아이들은 방과 후 경험을 쌓으려 일터로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간다. 그것도 자기가 직접 운전을 해서 말이다. 감옥 속 죄수 같은 기분으로 삼시세끼를 학교에서 먹던 나로서, 이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획일화된 교복도 두발 규제도 없고 진을 빼는 야간자율학습도 없는 여기가 별천지나 다름없다.
나라도 세대도 다른 걸 억지로 비교하나 싶었다. 하지만 첫째가 입시 원서를 쓰는 과정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또 떨궜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나는 선 지원 후 시험으로 당락을 결정했던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다. 지원한 대학교 강의실도 낯설었건만 하필이면 난로 바로 뒷자리에 내 수험표가 있었다. 땀을 삐질 흘리며 노곤함을 간신히 참고 치른 시험이 영 찜찜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기 너머 불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거절감을 뼈저리게 맛본 그날 밤은 아직도 내 인생에 어두운 그늘로 남아있다. 한 번의 시험으로 12년간의 노력이 단번에 평가되는 운명이 참 팍팍하고 거칠었지만 차마 찍소리도 못 내고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 후로 태평양을 건너 이국땅에서 두 자녀의 학부모가 됐다. 어린 둘째를 안고 큰애를 혼자 스쿨버스에 태워 보냈던 킨더 첫날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미국 학교를 첫째 아이를 통해 좌충우돌하며 같이 다녔다. 어느덧 막내도 공교육 마지막 학년인 시니어 이어를 지나고 있다. 졸업학점이 다 차서 1교시 수업을 뺄 수 있는 아들은 오늘도 느지막이 일어나 등교 준비를 한다. 엄마가 고3일 때는 말이지… 라고 잔소리 하고 싶지만 입을 꾹 다문다. 그 대신 아직도 나에겐 긴장이고 응어리인 학교가 준 상처를 살며시 보듬는다. 그렇게 오래 책상에 앉아 있어도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하고 싶은 게 뭔지조차 배우지 못했던 가여운 때를 위로하면서. 그저 대학이란 명패 따기에 급급해 벌벌 떨며 참았던 그때 그 생채기가 제법 다 아물어 간다.
자녀와 함께 한 학교생활도 올해가 마지막이다.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나 도시락 싸는 것도, 아이 학교 스케줄에 맞춰 라이드 하는 일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나를 위해 도시락을 세 개씩이나 쌌던 엄마에 비하면 날로 먹은 학부모 시절이다. 그래서 남은 시간이라도 반찬 하나 더 챙기며 정성을 다하련다. 아이들 덕분에 다시 다닌 학교는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 빛나는 유종의 미 속으로 차츰 옮겨지고 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시애틀한인 설미영ㆍ최영화씨 시애틀아트페어 참가
- 대한부인회 청소년 아카데미 “신나고 즐거웠다”(영상)
- “손준호ㆍ김소현 시애틀공연 입장권 구입을”
- 시페어서 한국 색ㆍ소리ㆍ태권도ㆍ한글 제대로 알렸다(+영상,화보)
- [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성실
- [보험 칼럼] 병원 리퍼럴을 받았을때 확인해야 할 사항
- 창발 자선기금마련 테니스대회 대성황이뤘다
- ‘100세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시애틀 한인대상 무료강좌 또 열린다
- ‘역사 다큐’제작한 이재길 타코마한인회장이 말하는 한국 역사는?(영상)
- 타코마지역 한인 1세, 워싱턴주 보험감독원장 출마
- 시애틀 한인마켓 주말세일정보(7월 26일~ 7월 29일, 8월 1일)
- [하이킹 정보] 시애틀산우회 27일 2개 코스로 정기산행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시애틀산악회 27일 산행
- “한인 여러분, 반드시 유권자 등록 및 투표를”(영상)
- 대한부인회, 페더럴웨이서도 간병인 직업박람회연다
- <정정> 타코마서미사 방생법회 28일 열린다
- 워싱턴주 한인목회 1세대 송천호 목사 별세---쉐리 송씨 시아버지
- 시애틀한인회 “이번 주말 시페어 토치라이트 이렇게 참가”
- 한인생활상담소, 자원봉사자 모집한다
- 제79주년 광복절 시애틀 경축식 열린다
- 시애틀ㆍ벨뷰통합한국학교 유아원 개설한다…“등록 상담”
시애틀 뉴스
- 워싱턴주 5가구중 한가구 전기요금 200달러 돌려받는다
- 워싱턴주 헬스케어 안좋은 편이다
- 2024 시페어 토치라이트 퍼레이드 이모저모(+화보)
- 12년간이나 시애틀시장했던 찰리 로이어 별세
- 워싱턴주 여성들에게 "연방대법원 신뢰하냐"고 물었더니
- 시택공항 주변 주택 방음대책 ‘허술’하다
- '전국 최악'이었던 시애틀 운전자들 전국 3위로 갑자기 껑충
- 워싱턴주서 도둑 자주 맞으면 보험 안받아준다?
- MLB최하위 '물방망이' 매리너스, 올스타 출신 아로자레나 영입
- 워싱턴주 컬럼비아강에 준치 대풍년 ‘물 반 준치 반’
- 시애틀지역 수상택시 이용객 부쩍 늘어났다
- 시애틀서 7살짜리가 강도짓을 했다고?
- 워싱턴주 자본이득세(Capital Gain Tax) 폐지될 가능성 크다
뉴스포커스
- '티메프 사태' 구영배 자택 등 전방위 압색…400억 횡령(종합2보)
- 한동훈 "당직인사, 잘 진행"…친윤 정점식, 사퇴요구에 "답 않겠다"
- 큐텐 구영배 "위메프 대표가 알리에 매각 추진…답답" 심경 토로
- 이진숙, 출장비 1700만원 현금받고 법카 2300만원 중복 사용
- 韓 수출 7000억 달성 '순항'…중국 경제 둔화·미국 대선 리스크는 '변수'
- "직접 나서라" 이재용 집 몰려가 총파업 책임 따진 삼성전자 노조
- 전공의 7645명 모집에 104명 지원…"8월중 추가 모집"
- 尹, 노동부 장관에 김문수…"노동개혁 완수 적임자"
- "이진숙 취임 첫날 방송장악"…민주, 내일 오전 탄핵안 발의
- "화살 어디 갔어?"…김우진 옆 '1점' 쏜 차드 선수, 뭉클한 사연
- "CCTV 속 악마의 웃음 경악"…이웃에 무료 나눔한 우산 다 쓸어간 여성
- 검찰, '특혜 채용 의혹' 서훈 전 국정원장 무혐의 처분
- 전공의 모집 마감 D-day…빅5도 지방병원도 지원자 '한 자릿수'
- 김만배·신학림 혐의 모두 부인…판사, 송곳 질문에 검·변 '식은땀'
- 남북 탁구 셀피, 프랑스에서도 화제…"센세이션 일으킨 사진"
- '돌아온' 삼성 반도체, TSMC 매출 넘었다…8분기 만에 1위 탈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