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김윤선] 빅 트리(Big Tree)
- 23-10-16
김윤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빅 트리(Big Tree)
고개를 한참이나 뒤로 젖혀서야 나무의 꼭대기가 보였다. 어림잡아 나이가 1500살이라는데 땅을 딛고 서 있는 장딴지가 여전히 탄탄했다. 286피트의 키와 74.5피트의 허리둘레를 가진 이 나무의 이름은 Big Tree, 레드우드 숲에서 산다. 인증샷을 하느라 발뒤꿈치를 들고 허리를 곧추세웠는데 나무에 비하니 손가락 한 마디에도 미치지 않았다.
겉껍질 같은 건 부질없는 것이라며 훌훌 벗어버린 맨살에 드러난 굵은 주름이 작은 도랑을 이루었다. 묵은 옹이가 움푹움푹 패인 건 삶의 연륜이리라. 휘어진 곳 없이 쭉 뻗은 둥치가 어찌나 우람한지 과연 숲을 대표할 만했다. 빅 트리만큼 키 큰 나무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출중한 외모가 한몫하는 건 어느 세상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멀리서 가까이서 사진 몇 장을 찍어봐도 나무를 온전히 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냥 눈에 담기로 했다. 찬찬히 더듬으니 아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더부살이 나뭇가지였다. 처음엔 옆에 있던 나뭇가지가 빅 트리에 팔을 걸쳐 놓았나 했다. 아니었다. 둥치에 웬 나무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제 이파리와 다른 게 적어도 두세 종류는 되는 듯했다.
옆으로 트레일 코스가 이어졌다. 키 큰 나무의 숲(Tall Tree Grove)이었다. 삶과 죽음이 한자리에 있었으며 죽은 나무에서 생명을 키운 것도 있었다. 나무 밑둥치가 동굴처럼 뻥 뚫린 것도 있고, 뿌리가 서로 닿아 한 몸이 된 것도 있었으며, 불에 탄 듯 속이 시커먼 흉터를 지닌 것도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자랐건만 모양새가 제각각이었다. 한 뱃속에서 태어나도 아롱이다롱이라더니 그렇다. 숲이 형성된 지 1500여 년, 그곳엔 마치 고대가 숨 쉬는 듯했다.
발바닥에 닿는 촉감이 숲의 속살을 밟는 듯 폭신폭신했다. 피톤치트 때문인지 기분이 상쾌해졌다. 장난기가 돌았다. 속이 뻥 뚫린 나무의 빈 둥치에 들어가 원시인의 흉내를 내고 곰이 되어 겨울잠 자는 시늉을 했다. 아, 나도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트레일 한 바퀴를 돌고 다시 빅 트리 앞에 섰다. 나무는 왜 저렇게 키를 키웠을까. 그리고 제 혈육도 아닌 걸 왜 품었을까. ‘잭과 콩나무’ 동화가 생각났다. 마법의 콩을 심은 잭이 콩나무를 타고 하늘에 올라갔던 것처럼 빅 트리도 그러고 싶었을까. 갈매기 조나단처럼 먼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었을까. 눈 아래 내려다뵈는 숲에서는 무엇을 보았을까. 그의 팔에 다른 수종의 씨를 안은 건 사랑이었을까, 연민이었을까. 무엇보다 그의 기나긴 삶은 축복이었을까, 형벌이었을까.
아흔을 넘긴 어머니는 매일 밤 죽음을 기다린다. 이제 삶에 무슨 미련이 있겠냐고 하신다. 아버지 생전에 버릇처럼 다음 생에선 절대 만나지 말자고 으름장을 놓더니 이제는 먼저 떠난 아버지가 왜 당신을 데리러 오지 않느냐고 성화다. 어릴 때 동무들도 저승에서 저들끼리 노느라 당신을 잊은 모양이라며 못내 서운해한다. 부지런히 걷던 아침 산책도 이즈음 그만뒀다. 어떤 말도 어머니의 삶에 의욕을 불어넣지 못한다. 어머니의 기력이 나날이 쇠잔하다.
얼마 전 모임에서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가 죽을 즈음엔 수명이 120세란다. 재수 없으면 150세까지 살 수도 있고. 그 말에 동감했다. 장수長壽가 재수 없음이 되어버린 인간 세상, 나무의 1500년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나무의 올곧은 자세가 마치 명상에 든 모습 같아서 다른 수종의 나무를 품은 게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어쩜 장수한다는 건 이미 무념무상의 경지일까, 아니면 무장무애한 성품 탓일까. 너나없는 이파리들이 제 어미 품에 안긴 양 편안해 보인다.
남편이 빅 트리 전신사진을 보여준다. 하늘에 닿은 듯한 나무꼭대기에서 이파리들이 이마를 맞닿은 채 반짝인다. 굵은 허리둘레만큼이나 나무의 넓은 품이 그려진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린우드 베다니교회 ‘여름성경학교’운영
- [시애틀 수필-염미숙] 메모리얼 벤치
- [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양심과 구원(1)
- 서은지총영사, 코리아나이트 시구 외교부 유튜브채널로 제작돼(+영상)
- 시애틀한인회,유급병가 세미나 개최한다
- [하이킹 정보] 시애틀산우회15일 합동산행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시애틀산악회 15일 산행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대한산악회 15일 토요산행
- 삼성 이재용, 시애틀서 아마존 CEO만나
- “한인상공인 여러분,그랜트나 대출기회 넘쳐요”
- “22일 베냐로야홀서 무료 공연 즐기세요”
- “전주서 열리는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 신청하세요”
- 한인학부모회 미술대회서 리아 최,엠마 양 ‘대상’
- 서북미문인협회 20회 뿌리문학신인작가상 공모한다
- 창발 한인들 참여하는 자선기금마련 테니스대회 개최한다
- “시애틀 한인여러분, 호주와 뉴질랜드여행 어때요?”
- 한국학교서북미협의회, 5개 행사 종합시상식 열어(+화보)
- 이번 주말 제74주년 6ㆍ25 합동기념식 열린다
- 재미대한탁구협회 회장배 대회 열린다(+영상)
- 시애틀 통일골든벨 ‘성공’…김환희군 1등 영광 차지(+영상,화보)
- <속보> 오늘 정부납품 세미나서 한인상공인 위한 플렉스 펀드도 설명
시애틀 뉴스
- 빌 게이츠 "차세대 원전에 1.4조 투자…향후 추가 투입"
- 미 패스트푸드 업계, 고물가 속 "5달러" 메뉴로 가격인하 경쟁
- 시애틀 날씨 하루새 비, 바람, 우박, 햇빛까지(영상)
- 워싱턴주 야키마지역 농장 가뭄으로 벌써부터 물부족
- 워싱턴주 의료용 마리화나 판매세 없어졌다
- 시애틀서 장장 56년간 아이들 가르친 여교사 은퇴
- 시애틀 방치된 빈집 강제철거 빨라진다
- "아마존, 직원들에 MS 클라우드 플랫폼 데이터 수집 지시"
- 아마존 시애틀 등 서민주택사업에 14억달러 추가 투자한다
- 올 여름에도 시애틀 '누드비치 공원' 그대로 운영된다
- 삼성 이재용, 시애틀서 아마존 CEO만나
- 시애틀 매리너스 23년만에 디비전 1위 노린다
- "타코마 교차로 위험 알고도 방치해 6명 사망"(영상)
뉴스포커스
- 눈물 흘린 박세리 "부친 빚 갚으면 또다른 빚…이젠 책임 안 진다"
- 尹 "환자 저버린 불법 진료거부, 엄정 대처…의료개혁 흔들림 없다"
- 국힘 "상임위 野단독 강제 구성 안돼"…헌재 권한쟁의심판 청구
- '1강' 한동훈 출마선언 임박…나경원·유승민 '이변' 노린다
- "이정재, 290억 유증 무효" 래몽래인 개미 12명에 소송당했다
- 10대 마약사범 올해만 198명 검거…5년 만에 10배 증가
- 육아 단축근무, 당당하게…업무분담 동료가 수당 받는다
- 고2 기초학력 미달, 역대 '최악'…방과 후 확대로는 "안될 텐데"
- 제2의 누누티비 운영에 성착취물 유포까지…30대 운영자 검거
- 3493억 vs 769억…'10년의 차이'가 개인투자용 국채 성과 갈랐다
- 라인야후 주총 메시지에 쏠린 눈…'기술적 탈네이버' 계획 나오나
- "잘나가는 K-뷰티 올라타자"…생활가전 업계, 본격 참전
- 삼성전자, '포브스 선정' 세계 기업 순위 21위…현대차 93위
- 최태원-노소영 이혼 판결 오류 "1조짜리일까"…"단순 실수" 의견 분분
- '집단휴진' 기간 아프면 어딜 가야할까…전국 408개 응급실도 운영
- 최태원 "'6공 후광' 판결로 SK 역사 부정당해…상고 결심" 공개 반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