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일까 전략일까…가동 늦어지는 TSMC 美 공장 '미스터리'
- 23-09-17
류더인 TSMC 회장 "전문인력 부족" 언급…美 공장 경험 없어 혼란 가능성
추가 보조금 획득·대만 안보 확보 위한 '의도적 시간끌기' 해석도 나와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인 대만 TSMC가 경영 방식의 문제로 미국 애리조나 파운드리 공장 가동이 지연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와 별개로 일각에선 TSMC가 미국 정부의 추가 보조금 확보와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대만 본토 안보 유지'를 위해 일부러 공장 가동을 늦추는 것이란 의혹도 제기된다.
17일 관련 업계와 복수의 외신에 따르면 TSMC는 현재 인력 부족 외에 행정 및 경영 문제로 애리조나 공장 가동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반도체 기술 보안 유지를 위해 TSMC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한편 미국 측에선 투명성을 요구하고 있어 업무 지연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TSMC는 지난해 총 400억달러(약 53조원) 규모의 미국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애리조나 1기 공정 시설에서 2024년부터 4~5㎚(나노미터·1㎚=10억분의 1m) 칩을 생산하고, 2026년에는 2기 공정 시설을 가동해 3㎚ 칩을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예상과 달리 공장 가동은 1년가량 미뤄진 상태다.
류더인 TSMC 회장은 지난 7월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반도체 설비 장비를 설치하는 데 필요한 전문인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 건설 중인 TSMC 파운드리 공장. (TSMC 제공) |
◇공장 지연 진짜 문제는…"대만, 첨단기술 이전 주저"
TSMC가 인력 부족을 공식적인 원인으로 꼽는 것과 달리 현장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미국 경제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복수의 TSMC 애리조나 공장 관계자를 인용해 경영진의 실수와 행정적 혼선이 건설 지연의 이유라고 보도했다.
한 관계자는 "인텔은 공사에 필요한 장비와 작업 규정, 마감일 등이 모두 담긴 청사진을 준다"며 "TSMC는 완전히 반대다. 그들은 해석하기 힘든 지시사항이 담긴 이메일과 사진을 보내는 방식으로 공사를 지휘한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영국 가디언에 "각각 다른 계약업체 노동자들이 똑같은 작업을 하더라도 각자 전달받은 지시사항이 모두 달랐다"며 "아무도 이를 조정해주지 않아 오해가 쌓여 공사가 계속 지연됐다"고 전했다.
안전에 대한 우려도 터져나왔다. 한 현장 노동자는 인사이더에 "많은 대만인 노동자들은 작업화 대신 테니스화를 신고 일하거나 보안경도 착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안보'를 이유로 TSMC가 의도적으로 공사를 미루고 있다는 관측이다.
류 회장은 지난달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실리콘 방패' 개념을 믿지 않는다며 "중국은 반도체 때문에 대만을 침략하지 않으면서도 침략하려 할 것이다"고 우려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대만은 자국의 첨단 기술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을 주저한다"며 "애리조나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할 땐 대만은 이보다 한 세대 높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지난해 미국이 칩스법(반도체지원법)을 통과했을 당시 왕 메이화 대만 경제부 장관은 "(TSMC의 미국 투자에도) 반도체에서 대만의 핵심 위치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 바 있다.
6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애리조나주 최초의 TSMC 팹 공장을 방문하고 마크 리우 회장의 말을 듣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
◇"美 공장 쓸모없다"…TSMC의 새로운 협상 카드?
IT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TSMC 내부 관계자와 업계 관계자들은 애리조나 공장에서 애플과 엔비디아, 테슬라의 첨단 반도체 생산이 어렵다고 진단했다.
TSMC 애리조나 공장에는 반도체 후공정인 패키징 관련 시설이 없어 미국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대만으로 옮겨가 추가적인 패키징 작업이 필요하고, 이때문에 애리조나 공장이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반도체 분석 업체 세미애널리틱스의 수석 연구원 딜런 파텔은 "TSMC 애리조나 공장은 대만을 둘러싼 미중 지정학적 긴장을 해소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paperweight)"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삼성전자를 비롯한 다른 파운드리 업체들 역시 미국 내에 패키징 공정이 없고, 수십 년간 차질 없이 운영해 온 만큼 이 같은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특히 TSMC가 미국에 추가 협상 카드를 내밀기 위한 의도가 깔린 것으로도 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TSMC가 짓고 있는 애리조나 공장은 정사각형 1층짜리 건물로 보통 반도체 공장이 (일반 건물 13층 수준의) 2층짜리 건물임을 고려할 때 작은 사이즈"라며 "그런데도 공장이 완공 및 가동이 늦어진다는 것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만으로 이동해 패키징 작업을 하는 것도 사실 큰 문제가 없는 부분인데 갑자기 패키징 공정이 언급되는 것은 보조금을 더 받아내거나 중국으로부터 지정학적 리스크를 덜기 위한 시간끌기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짓고 있는 삼성 파운드리 공장 모습. (경계현 사장 SNS 캡처) |
◇"우리는 홈, 경쟁사는 어웨이"…30년 노하우 담는 삼성
삼성전자(005930)는 미국에 처음 공장을 짓는 TSMC와 달리 미국에서 30년간 공장을 운영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TSMC가 겪은 시행착오를 경험했고 그때 얻은 학습효과와 노하우를 신규 공장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998년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을 지었다. 지난해 11월에는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기 위해 170억달러(약 22조5400억원) 규모의 투자를 결정하고 올 상반기 착공에 들어갔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 사장은 테일러 공장의 '2024년 하반기 가동 계획'이 순항 중임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는 최근 서울대 강연 자리에서 "우리 직원들은 삼성 오스틴에서부터 쌓아온 노하우를 가지고 홈(home) 경기를 하고 있고, 경쟁사는 어웨이(away·원정) 경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 있는 삼성전자 직원들이 오랜시간 자리 잡은 오스틴 공장에 대해 '미국 회사'라는 정체성과 인식을 갖고 있는 만큼 새로 짓고 있는 테일러 공장 역시 '홈'에 지어진다고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TSMC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편 삼성전자 테일러 공장에는 5G(이동통신), HPC(고성능컴퓨팅), AI 등에 사용될 첨단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최첨단 라인이 들어서며 내년 말 4나노(㎚·1㎚=10억분의 1m) 제품을 생산할 예정이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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