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낙타와 하루살이 비유
- 23-08-28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낙타와 하루살이 비유
충청도 지방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부유한 농부가 도박에 빠져 가산을 조금씩 잃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그 많은 전답을 다 팔아버리다가 마지막 남은 집 문서까지 들고가 최후 승부를 겨루다 끝내 그 집마저 잃고 말았습니다. 빈털털이가 된 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길가에 나뭇가지들이 널려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살림에 보태려고 그 가지들을 주워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그 농부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을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로부터 파송된 무리들에게 잡히신 후 곧바로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 몇가지 종교적인 죄목을 부과시켰지만 그들이 예수를 종교재판으로 처형하기에는 너무나 부담스러웠을 뿐 아니라 군중들의 격한 반응 등 예기치 않은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에 종교적인 죄목보다는 로마 황제 모독죄나 군중 선동죄 같은 정치적 죄목을 붙여 로마 정권으로 하여금 예수를 제거시키게 할 요량으로 예수를 총독 빌라도의 법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때 그들은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의 영역인 총독의 뜰을 밟는 것은 부정을 타는 행위라고 믿었기 때문에 다음 날 유월절 행사를 거룩하게 보내기 위해서 그 뜰안으로 들어가지를 않았습니다. 그러한 사정을 안 빌라도가 직접 그 무리들 앞으로 나가서 그들의 청원을 들었습니다.(요 18:28)
이방인의 뜰을 밟는다고해서 몸과 마음이 갑자기 더러워질리가 없는 것이고, 다만 단정하고 청결한 몸과 마음으로 유월절을 맞기 위한 상징적인 가벼운 규례에 불과한 것인데 그 규례는 그토록 철저하게 엄수하면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갖 음모를 꾸며 죽이려는 그 엄청난 죄악을 획책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모순된 행위입니까. 가옥과 전답을 모두 도박으로 날려버린 사람이 버려진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이와 유사한 일들이 지금 기독교에서 교단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인 신앙 생활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토록 죄악시하는 계명위반을 교단이 앞장서서 용인하고 있으면서도 경미한 규례는 유난히 강조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회생황에서 행하는 모든 집회 때마다 꼬박꼬박 잘 참석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판하기 쉽고,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봉사활동에 열심인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비난하기 쉽고, 십일조 헌금을 잘 바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사람을 정죄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게 비난받고 정죄 당하는 사람보다 남을 비난하고 정죄하는 사람의 죄과가 훨씬 더 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요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마 23:23~24)”
외식하는 자들이 잘 실행한 것은 눈에 보이는 십일조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버린 것은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었습니다. 그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지만 낙타만큼이나 크고 중한 것들인데 그것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삼켜버리면서 하루살이 만큼이나 작은 헌금바치는 일에만 신경을 쓴다고 질책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왜 하루살이 같은 하찮은 규례에는 민감하면서도 낙타와 같은 크고 중한 계명에는 맹인이 될까요. 재물이든 명예이든 쾌락이든 어떤 이해관계가 가로 막게 되면 일의 경중도, 정의와 불의도, 선과 악도 심지어 성경의 내용까지도 나에게 유리하도록 해석하여 스스로 합리화시키면서 올바른 분별력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분별은 하면서도 욕망에 이끌리어 정도(正道)와 진리에 역행하는데에 죄의 심각성이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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