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매료됐다" 비행기 안타고 200여개국 방문한 여행자[피플in포커스]
- 23-08-07
운송업 재직 경력 살려 컨테이너선 이용…총 203국 여행
북한 "공산주의 국가 아닌 민족주의 강한 나라 같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 10년간 전 세계 200여 개국을 여행한 덴마크 남성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2일(현지시간) CNN과 인사이더 등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0월10일 여행을 시작한 톨비요른 페데르센(44)은 지난달 26일 덴마크 동부 해안 오르후스 항구를 밟았다. 203번째 여행 국가인 몰디브를 마지막으로 여행을 끝낸 뒤였다.
페데르센이 처음 세계 일주를 계획한 건 2013년 1월이다. 아버지가 보내준 세계여행 관련 기사를 읽은 페데르센은 세계의 모든 나라를 가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당시 34였던 그는 50개국을 여행한 상태였다. 다만 이 여행에도 엄청난 비용이 들었기 때문에 전 세계 모든 나라를 밟는 건 평생에 걸쳐 이뤄낼 숙원 정도로 여겼다. 관련 기사를 더 찾던 페데르센은 전 세계에서 약 200명 만이 세계 모든 국가(유엔 기준 193개국)를 여행했다는 사실을 접했고, 그렇다면 기왕 하는 김에 '최초로'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전 세계 여행에 성공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페데르센이 자신의 블로그 '원스 어폰 어 사가'에 올린 여행 경로. |
우선 그는 덴마크에서 시작해 유럽을 돈 뒤 북미, 중남미를 거쳐 아프리카로 넘어가기로 했다. 아프리카에서 중동과 아시아를 지나 태평양 도서국가와 오세아니아 대륙을 밟는 식으로 경로를 구성했다.
페데르센은 기차, 택시, 버스, 차량 공유 서비스, 페리 등을 이용해 전 세계를 횡단했다. 특히 운송 및 물류 분야에 몸을 담았던 전력이 그의 여행을 도왔다. 그는 민간 항로가 개통되지 않은 경로를 이동하기 위해 각종 화물 회사와 협력해 컨테이너선에 몸을 실었다.
페데르센은 "갑자기 컨테이너선에 나타나서 탑승할 수는 없다"며 "사전에 회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작업에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가 203개국 여행을 여행하는 동안 사용한 하루 경비는 20달러(약 2만6000원)에 불과하다. 심지어 교통, 숙박, 식사, 비자 비용이 모두 포함된 값이다. 이처럼 저렴한 가격에 여행이 가능했던 건 덴마크 에너지 회사인 로스 에너지의 후원 덕이었다. 또 에세이로 돈을 벌었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당초 페데르센은 203개국을 여행하는 데 4년이 걸릴 것으로 봤지만, 막상 발을 떼자 여행 기간은 늘어만 갔다. 주된 문제는 비자였다. 적도에 있는 기니의 비자를 취득하기 위해 4개월이 걸렸고, 시리아, 이란, 나우루, 앙골라 등 국가들도 비자를 받기 쉽지 않았다. 적십자사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이란 비자를 얻는 데는 3주, 시리아 비자를 획득하는 데는 거의 3개월이 걸렸다.
몽골 국경에서 중국 비자를 취득한 다음 파키스탄으로 향할 생각이었지만, 중국 비자를 받는 데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미리 받아둔 파키스탄 비자가 막 만료되려던 참이었다. 페데르센은 중국을 들르지 않고 몽골에서 파키스탄에 가기 위해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을 거치며 7500마일(1만2000㎞)을 돌아가야 했다.
가나에서는 뇌성 말라리아를 겪었고, 아이슬란드에서 캐나다까지 대서양을 건너는 동안 격렬한 폭풍우에서 살아남았다.
페데르센이 지난 2019년 북한을 방문한 모습.(X 갈무리). |
페데르센은 한국을 인상적인 나라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우선 그는 2019년 177번째 국가인 한국을 방문하기 전 북한부터 방문했다. 중국 단둥에서 기차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평양을 향했다. 그는 기차에서 본 북한의 풍경을 두고 "솔직히 말하자면 감동적인 풍경은 아니었다. 끝없이 푸른 논이 펼쳐져 있었고, 나무는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또 그는 "북한은 부유한 나라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가 90년대에 폴란드에서 봤던 것과 같았다. 구소련 국가에서 본 적 있는 장면도 있었다"며 "평양은 대도시처럼 보였다. 영화 세트장 같지 않았고, 인구 300만 명의 도시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에서 머문 6일 동안 비무장지대(DMZ)와 승전기념관 등을 둘러본 뒤 다시 단둥으로 돌아갔다.
페데르센은 북한을 두고 "공산국가가 아니라 민족주의가 강한 나라로 보인다"며 "내가 얼마나 자유롭게 사진을 찍었고, 얼마나 많은 것을 봤는지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분명히 놀랄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페데르센은 단둥에서 베이징으로 이동한 뒤 베이징에서 페리를 타고 한국 땅을 밟게 됐다. 그는 인천에서 2년 만에 자신의 막내 여동생과 조우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한국에 매우 매료됐다. 기술이 발전했고, 경제가 강하고, 여권(旅券)도 강력하다"며 "역사가 풍부하고, 좋은 음식과 산이 많다. 언어 장벽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친절하고 정중하고 도움을 주려고 한다"고 적었다.
페데르센이 이동 수단으로 이용했던 머스크의 컨테이너선.(인스타그램 갈무리). |
페데르센을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다름 아닌 코로나19로 인한 국경 봉쇄였다. 당시 목표했던 여행 국가 중 9개국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는데, 홍콩에 발이 묶였다.
그는 "홍콩에서의 시간은 내 인생에 최악의 시간이자 최고의 시간이었다"며 "9개국을 방문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프로젝트를 포기해야 할지 결정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내 삶의 얼마를 이 프로젝트에 바칠 것인지 내 자신에게 물어봐야 했다"며 "하지만 세상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홍콩에서 생활도 하고, 특별한 인연도 많이 맺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월, 페데르센은 마침내 홍콩을 떠나 팔라우로 향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 탓에 각국 정부에 '간청'에 가까운 부탁을 해야만 했다.
페데르센은 "통가의 경우 보건부, 해군, 군과 연락을 취했지만, 총리는 계속해서 입국을 반대했다"며 "어느 날 밤 총리가 나를 들여보내라고 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고 전했다.
총 3576일간의 여행 동안 그가 이용한 교통수단은 컨테이너선 37대, 기차 158대, 버스 351대, 택시 219대, 보트 33대, 인력거 43대 등이다. 이동 거리는 22만3000마일(35만8800㎞). 지구 9바퀴를 도는 것과 맞먹는 거리다.
그러나 페데르센은 자신의 여행에서 중요한 건 이런 숫자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낯선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친구'라는 모토로 여정을 떠났고, 이 문장이 사실이라는 점을 몇 번이나 깨달았다"며 나는 여행 동안 아주 많은 낯선 이들의 집에 머물렀고, 분쟁 지역과 바이러스가 발병한 나라 등 전 세계 모든 나라를 무사히 통과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사실은 내가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거나 세상은 사람들이 뉴스를 통해 보는 것보다 더 나은 곳이라는 점을 방증한다"고 덧붙였다.
페데르센은 일단 휴식을 취한 뒤 캐나다 영화 제작자 마이크 더글러스와 함께 다큐멘터리 제작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이후 여행에 대한 책도 펴낼 계획이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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