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이 에스더] 별을 향해 가는 사람들
- 21-05-03
이 에스더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별을 향해 가는 사람들
동생이 뜬금없이 USB를 보내왔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제작한 우주 과학 다큐멘터리라고 했다. 작은 우물만 한 나의 하늘에 갑자기 별들이 복작거리기 시작했다.
조기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 동생은 나름대로 짜놓은 시간표에 맞춰 찬찬히 준비를 하고 있다.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천체물리학 공부라고 했다. 이제라도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단다. 그 말을 들은 후로 동생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언제부터 동생은 별을 바라보았을까. 밤하늘의 별들이 무슨 말을 했기에 다시 대학에 가서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굳혔을까. 13부작이나 되는 방대한 <코스모스>를 보는 내내 마음은 동생이 지나온 삶의 궤적을 좇고 있었다.
몇 년 전, 한국에 파견근무 중이던 동생네 집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전철역 근처에 있는 조각 작품이 눈에 띄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세 개의 커다란 돌덩어리를 세워둔 것 같았다. 그런데도 어딘지 모르게 따스한 기운이 느껴져 자꾸만 눈길이 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아빠와 엄마, 아이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가족”이라는 글씨가 작가의 이름과 함께 조그맣게 새겨져 있었다.
파격이었다. 대부분의 가족상이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과는 달리 ‘가족’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 사람이 따로 떨어져 서 있었다. 낯설게 여겨졌던 ‘가족’에게로 점점 관심이 쏠린 것은 그들의 시선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길목에 서서 조용히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세 사람.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들 곁에 가만히 서 보았다. 그들의 숨결이, 심장의 박동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에게서 담배 냄새가 났다. 아직도 담배를 끊지 않았다고 구시렁거리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갓 태어난 아이를 수술실에 보내 놓고 기다리는 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이후로 몇 차례 같은 상황이 생겨서 담배를 태우곤 했는데 곧 끊을 거라며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벌써 대학 졸업반이 된 예쁜 조카의 몸 안에는 네모난 배터리가 들어 있다. 심장 박동을 위한 장치이다.
아마도 그 즈음부터였을 것 같다. 동생이 밤하늘을 바라보게 된 것은. 막 세상에 나온 연약한 생명을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젊은 아빠의 절망이 얼마나 깊었을까. 담뱃불처럼 벌겋게 타들어가는 속을 부둥켜안고 어둠 속에서 올려다 본 하늘엔 아마 별조차 보이지 않았을 게다. 바위 같은 아픔이 머나 먼 밤하늘에 별이 되어 떠오르기까지 하얗게 뒤척였을 수많은 밤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따로, 그러나 함께 있는 세 사람. ‘가족’이라는 조각 작품이 마치 동생네 같았다. 내가 네가 될 수만 있다면 수만 번 너의 심장이 되어 주었으련만. 그리 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그렇기에 더욱 절절할 수밖에 없는 사랑이 그들 사이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가족’의 구도가 좋았다. 언뜻 외롭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그들 안에는 안정감과 방향성이 있었다. 그냥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 사람은 분명히 한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날마다 그들의 키가 조금씩 자라는 것 같았다. ‘가족’의 이야기가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너를 위해 네가 되길 원했던 마음들이 서로의 삶을 붙들고 있었기에 흔들려도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를 굳게 지켜올 수 있었을 게다. 햇살이 곱게 내리는 날, 그들은 가슴에 안은 빛줄기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한 줌씩 나눠주고 있었다. 동생네도 그렇게 힘든 이들의 손을 말없이 잡아주곤 했다.
세 사람의 시선은 별을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어둠의 깊이를 아는 사람이라야 별을 가슴에 품을 수 있으리라. 밤이 깊어도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은 아득히 먼 곳에서 그들을 향해 손짓하는 별이 있기 때문이다.
칼 세이건은, 우리는 모두 별에서 온 사람들이라 했다. 별을 떠나오면서 우리는 어쩌면 조각 하나쯤 별에 남겨두고 온 것은 아닌지. 그래서 누구나 조금씩 부족하고 모자란 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서로 손을 잡아주며 함께 가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게다. 조각에 대한 그리움이 우리의 눈을 들어 별을 바라보게 한 것은 아닐까. 가슴에 별을 품고 살다가 언젠가 별로 돌아가는 날, 우리 모두 완전한 빛 가운데서 온전한 별꽃으로 다시 피어날 수 있기를.
동생이 금연을 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간다. 많은 것을 내려놓았다는 의미일 게다. 여전히 존재에 대한 질문을 계속 하고 있는 동생이 이젠 어둠 너머의 우주에서 숨 쉬고 있는 별들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왕자’의 친구 같은 조카도 아빠와 함께 별을 보며 아름다운 여행을 계속 할 수 있길 바란다.
오늘은 유난히 별이 많다. 어둠 속에서 별을 보는 이들의 집 마당에 별빛이 가득 내렸으면 좋겠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US메트로 김동일 행장 임기 3년 연장키로
- US메트로은행 '미 전국 중소은행중 실적 탑 20'에 들어
- 이장우 대전시장, 스타벅스 관계자 만나 '로스터리 대전건립 추진'
- 재미 한인 탁구인들의 축제 성황리에 열렸다
- KWA대한부인회 타코마아파트 다음달 신청받는다
- 시애틀-대전 자매도시 35주년 기념행사 화려했다(영상,화보)
- "한국일보 청암장학생 신청하세요"
- 시애틀 한인중고생 위한 SAT캠프 열린다
- 시애틀타임스 “양희영, 은퇴하면 안될 실력자다”
- [영상] 샛별예술단 베냐로야홀서 공연 펼쳐
- 지소연 선수, 시애틀한인회 명예회원됐다(+영상,화보)
- 페더럴웨이 한국정원 ‘한우리 정원’ 10월 개장한다(영상)
- 미주한인의 날 워싱턴주 신임 이사장에 김성훈, 대회장 김필재(영상)
- [시애틀 수필-김윤선] 찬란한 빛의 밤
- [신앙칼럼-최인근 목사] 인생은 결단입니다!
- [서북미 좋은 시-김순영] 쉼미 좋은 시-김순영] 쉼
- 서은지 총영사 알래스카서 통일강연회
- 한국 우상임씨, 시애틀서 아코디언 1인극 펼친다
- 이장우 대전시장,경제사절단 이끌고 시애틀온다
- 오레곤한인회 주최 '2024 서북미 오픈골프대회'열린다
- [하이킹 정보] 시애틀산우회 22일 합동캠핑
시애틀 뉴스
- 보잉 '737맥스 사고'관련, 당국과 협의 막바지에 들어섰다
- 보잉 유인우주캡슐 ‘스타라이너’ 수리중이다
- 결국 워싱턴주 아번경찰관 살인죄 평결 받았다
- 워싱턴주 유명 요리사의 '파격행보' 화제다
- SK 최태원회장, 시애틀 와서 MS CEO만났다
- 미 대법원, 아이다호 응급 낙태 허용…바이든 정부 '작은 승리'
- 아마존도 사상 최고가 시총 2조달러 돌파했다
- 아마존 7월16∼17일 이틀간 대규모 할인 프라임데이
- 시애틀서 문닫을 초등학교 명단공개 다시 연기됐다
- EU, MS '반독점법 위반' 잠정 결론…"화상회의앱 끼워팔아"
- 시애틀지역 재산세 감면 혜택자 크게 늘어난다
- 시애틀타임스 “양희영, 은퇴하면 안될 실력자다”
- 양희영 워싱턴주 사할리서 메이저 KPMG 위민스 우승(+영상)
뉴스포커스
- '아리셀' 동료들 눈물의 조문 "믿기지 않아요…안전교육도 없어"
- 원희룡 "단일화 언급 않겠다" 나경원 "일고의 가치 없다"…선그은 연대설
- 올특위, 내달 26일 전 직역 참여 토론회 개최…휴진 여부는 자율
- 허웅 측 "이번 사건과 무관한 故 이선균, 고인·유족에 사과"
- 야 7당, 용산 찾아 해병대원 특검법 요구…"朴 정권 뛰어넘을 국정농단"
- 제2연평해전 승전 22주년 기념식…"적 도발 시 수장시킬 것"
- 방통위 공방 격화…"탄핵안, 野의 언론 장악 야욕" vs "명백한 불법·무효"
- 시대상인가 가족해제인가…패륜자식 상속 배제·친족 재산범죄 처벌
- 부산, 이러다 사라질라…광역시 중 첫 '소멸 위험 지역'
- "손흥민 봐서 5억 달라, 20억 안 부른 게 다행" 학부모 '녹취' 파장
- "尹, '이태원 조작 사건' 발언 직접 해명해야"…민주, 총공세 돌입
- "압구정현대 경비원 100여명 대량해고 정당"…대법서 확정
- 서울 집값, 3주 연속 오름세…경기·인천 수도권도 동반 상승
- 박수홍·박세리 울린 '친족상도례'…법 개정 시기는 미지수
- "저출산 대책, 소득공제 확대보단 보육비 등 재정지원이 효율적"
- 중처법 시행 후 최악 '화성 참사'…수사능력 시험대 오른 고용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