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미 좋은 시-최재준] 판도라 상자
- 23-07-16
최재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판도라 상자
독립기념일 퍼레이드로 술렁이는 도심
고층 건물 그림자가 덮은 뒷골목은 선전포고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구둣발을 깃발처럼 등에 꽂고
편의점 주차장에 널브러진 흑인 여인
분유 한 통이 그녀를 전쟁포로로 만들어버린 것인가
“숨 막혀요, 숨 쉴 수 없어요”
백인 경찰관들이 겨누는 총구 앞에
허벅지와 어깨가 눌린 채 버둥거리고 있다
숨 막혀 본 적 없는 사람은 숨 막히는 절규를 알지 못하는 걸까
굿캅이 가진 총은 모두 착한 총인가요?
배드캅이 가진 총의 피부는 어떤 색인가요?
묻고 싶다가도
명령을 따르는 군인처럼 모두 뒷걸음질 친다
숨통을 열어 줄 마법은 판도라 상자에 갇힌 지 오래
여인이 찾던 열쇠는 허기진 분유통에 숨겨져 있지 않았다
모성 옆엔 눈을 껌벅이며 엎질러진 아기
고사리손이 움켜쥔 성조기엔
포성이 남긴 연기처럼 기죽은 바람
비둘기를 꺼내줘야 할 마술사의 손가락은
방아쇠에 걸려있고
판도라 상자엔 자물쇠 하나
금속성 소리를 내며 덧채워진다
인류애와 평등을 목 터지게 외치며
화려한 퍼레이드에 떠내려가는 형형색색의 인종들
정작 무색인 햇살만
눈을 부라리며 총구를 막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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