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37년 만에 추방 오리건 한인사건 "홀트 책임 1억원 배상하라"
- 23-05-18
아담 크랩서씨 관련 한국 법원 판결
한국의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가 해외 입양 아동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책임이 법원에서 처음으로 인정됐다. 1979년 미국에 입양된 지 37년 만인 지난 2016년 시택공항을 통해 추방돼 홀트와 대한민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오리건 입양한인 아담 크랩서 (한국명 신송혁)씨 사건에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부장 박준민)는 16일 홀트가 신씨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3살때 미국행 비행기를 탄 신씨는 양부모의 아동학대, 두 차례의 파양을 겪으며 16살의 나이에 홈리스 생활에 내몰렸다. 신씨는 성인이 돼서야 자신에게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는데, 시민권이 없는 상태에서 과거 경범죄 전력이 문제가 되자 곧바로 추방됐다.
신씨 측은 과거 홀트와 정부가 입양 절차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지난 2019년 소송을 냈다. “아동이 현지에서 시민권을 획득했는지 확인하는 것은 아동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인데도 관리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이날 재판부는 “홀트가 신씨 후견인으로서의 보호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며 “예비 양부모에게 시민권 취득 절차를 이행하도록 고지하고 지도했어야 한다”고 인정했다.
당시 신씨가 받은 비자는 IR-4 비자로, 미국 내에서 입양 재판을 마무리하는 아동들에게 부여된다. 양부모가 입양아를 데리러 한국에 와 입양을 완료한 아동들에게 부여되는 IR-3 비자와는 달랐다. IR-4 비자로 미국에 들어온 아동에게는 한시적인 영주권만 부여되고, 양부모에게는 2년간 임시양육권이 생긴다. 2년이 지난 뒤 양부모가 관할 주 법원에 가서 입양재판을 받아야 절차가 완료되고 시민권 취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재판부는 “홀트가 IR-4 비자로 보낸 아동들이 현지에서 2년을 지내는 동안 후견인으로서 보호 의무를 다할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당시 IR-4 비자를 통해 횡행하던 ‘대리입양’의 문제점이 다시금 떠올랐다.
1981년부터 약 17개월간 홀트 해외입양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노혜련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해 이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양부모가 아이를 직접 데려가지 않는 대리입양의 경우 외국으로 나갈 일이 있는 유학생 등에게 아이 2~3명을 들려 보내 ‘아르바이트’ 개념처럼 운영됐다”고 밝힌 바 있다. 노 교수는 “아이가 현지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있는지, 학대받거나 파양되지는 않았는지에 대해서 파악하거나 개입하는 절차가 없었다”고도 증언했다. 재판부는 “구 입양특례법에 따라 홀트가 국적취득 여부를 확인하고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다만 “홀트가 입양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일부러 고아 호적을 만들었다”는 신씨 측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신씨 측은 “홀트가 허위로 기아발견 보고를 하면서 본래 이름 ‘신성혁’이 아니라 ‘신송혁’으로 올렸다”며 “신씨의 정체성을 알 권리, 친생부모를 알 권리 등이 침해됐다”고 주장했는데, 재판부는 “홀트가 아동 성명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과실은 있을지언정 임의로 바꾼 것은 아니다”라고 봤다. 홀트가 해외 입양으로 거액의 수수료를 받아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주장 역시 “과다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신씨 측은 홀트를 제대로 관리 감독하지 못했다며 정부 책임도 함께 물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후적으로 판단했을 때 기존 제도나 대응에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런 사정만으로 대한민국 소속 공무원들이 고의 또는 과실로 감독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의무를 다해야 하는 홀트와 달리 대한민국은 아동 권익과 복지를 증진해야 하는 일반적인 의무를 담당한다”고 봤다. 재판 과정에서 정부는 “입양은 사인 간의 제도에 불과해 공무라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대리인단은 “입양 기관의 책임만 일부 인정된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신씨와 의논해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미국에서 추방된 신씨는 자녀들과 그나마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멕시코에서 머무르고 있다. 김수정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한 사람이 이렇게 인생에서 많은 일을 당할 수 있나 싶은 정도의 일을 신씨는 당해왔다”며 “대한민국이 먼저 사과하고 신씨가 자라온 곳에 다시 돌아가서 자유롭게 왕래하며 살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에 “수십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을 상실한 원고가 겪을 정신적 고통은 매우 클 것이 분명하다”고 적었다.
이날 법정에는 해외입양인 3~4명이 찾아와 선고 공판을 방청했다. 1960~1990년 홀트, 한국사회봉사회(KSS) 등 해외 입양 기관이 아동들을 보내는 과정에서 벌어진 인권 침해를 규명해달라며 진실화해위원회에 신청서를 낸 이들 중 일부다. 이들은 진화위 결정을 받아본 뒤 신씨처럼 소송에 나설 뜻도 내비쳤다. 지난해 12월 진화위는 친생 부모가 있었는데도 입양 문서에 고아로 기록되는 등 정보가 조작됐다는 내용 등의 피해 사례에 대해 조사를 개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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