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예약 호텔 갔더니 반쯤 붕괴…일상이 무너졌지만 "이웃 구할 것"
- 23-02-12
지진으로 도로 등 기반시설 파괴…구급차 위험한 산길로 이동하기도
대지진 발생 닷새째를 맞은 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터키)에서 주민들과 구호단체들은 기반 시설이 파괴돼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일상이 재해에 잔인하게 파괴된 상황 속에서 주민들은 분투하고 있다.
이날 밤 12시쯤 시리아와 접한 남부 하타이주(州) 안타키아에서 아다나로 향하는 길은 가시밭길 그 자체였다.
전기가 끊겨 신호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도로의 상황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안타키아에서 아다나까지 약 200km 거리로 대략 3시간30분 정도 소요되지만, 이날은 달랐다.
지도 앱에 의지해 길을 나서보지만, 각종 도로가 폐쇄된 상태이거나 수많은 차로 인해 안타키아를 빠져나가기 쉽지 않았다.
고속도로에서 구급 차량이 이동할 수 있도록 길을 양보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었다. 신호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차량 행렬이 엉켜 차량 정체가 지속됐다.
고속도로 이외의 경로를 이용해 보지만 튀르키예 군과 소방 당국은 도로에서 연신 팔로 'X'자를 그리며 도로가 막혔음을 알렸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차들은 연신 경적을 울리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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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의 한 구급차가 10일(현지시간) 안타키아에서 아다나로 향하는 울퉁불퉁한 산길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2023.02.10/뉴스1 |
아다나로 향하기 위한 마지막 방법은 산길을 타는 것이었다. 산길에 접어들자 수많은 차가 줄지어 주행 중이었다. 도로는 큰 트럭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정도였다. 고속도로가 정체되자 구급차마저도 이 위험한 노선을 택해야 했다.
도로의 상태도 최악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차량을 몰다가 지진의 여파로 갈라진 틈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위험천만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날 오전 아다나에서 카라만마라슈로 향하는 길. 도로에서는 지진으로 손상된 도로를 복구하기 위한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복구팀 중 한 남성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초록·빨강 표지판을 들면서 차량이 안전히 지나갈 수 있도록 연신 고함을 쳤다.
카라만마라슈주(州)로 접어들자 생존자를 수색 중인 구조팀이 차량 운전자들에게 시동을 급히 꺼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생존자의 희미한 목소리를 듣기 위한 요청이었다. 전날 안타키아에서 수없이 목격했던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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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 지진피해 현장에서 한 시민이 잔해 속 물건을 찾고 있다. 2023.2.10/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
◇카라만마라슈 주민들 생존 위한 사투
카라만마라슈주의 주도인 카라만마라슈시(市)에 진입하자 가장 먼저 만난 풍경은 자신의 무너진 주유소를 지키기 위해 사냥용 소총을 멘 한 남성이었다.
남성은 주유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경계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여기가 당신의 건물인가'라고 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접근하지 말아 달라는 손짓을 했다.
헝클어진 머리를 묶은 한 남성은 무너진 건물을 가리키면서 "이곳에 여전히 시신이 있다. 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큰 길을 건너 건물 붕괴 현장에는 수많은 인력이 잔해를 파헤치면서 생존자를 수색하고 있었다. 현장에 접근하자 경찰은 여권 등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군인들은 촬영을 막기도 했다.
한 남성은 구조 현장 앞에서 메카가 위치한 남쪽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대형 슈퍼마켓도 벽면이 일부분 떨어져 있었으며, 구조 현장 인근 바닥은 진흙탕이었다. 포크레인이 건물 잔해를 파헤치면서 현장은 분진이 가득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마스크가 없었다.
이날 예약한 카라만마라슈의 숙소에 도착했지만 이미 호텔은 지진의 영향을 받아 운영을 중단한 상태였다. 호텔 벽면이 떨어져 나갔다. 평상시라면 연회장으로 쓰였을 장소는 천장이 무너져 엉망이 된 상태였다. 천장에 달려있던 빔프로젝터는 간신히 매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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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 한 호텔 연회장이 지진으로 위해 파손돼있다. 2023.2.10/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
◇극한 상황 속에서 빛나는 연대…"내 이웃이니까 도와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민들과 구호 인력들은 비극을 함께 견뎌내고 있었다.
이날 아침 아다니의 구조 현장 앞 임시 거처에서 회색 모자를 쓴 남성은 자신의 집이 무너지거나 가족이 다친 것은 아니라 말했다.
'그런데 어째서 나와 있는가' 라고 묻자 그는 "내 이웃이니까"라고 답하며 뜨거운 우유를 건넸다. 현장에서 주민들은 수프와 빵을 나눠 먹으며 모닥불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카라만마라슈에서도 이 같은 연대 의식이 빛났다. 지진으로 파손된 비료 도매품점에서 50대로 보이는 남성은 이곳이 아닌 길 건너편 현장이 더 위급하다며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카라만마라슈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한 선생님은 경찰인 자신의 동생과 함께 현장에서 구호 활동을 돕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는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며 "동생과 함께 내 지역을 구하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지진 현장에서 놀라웠던 점은 낯선 이에게도 웃으며 "혹시 먹을 것이 필요한가"라고 묻는다는 점이다.
아다니 임시 거처에서 20대 청년에게 '현 상황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보느냐'라고 묻자 그와 그의 친구 2명은 웃음을 터뜨렸다. 청년은 대신 "아침은 먹고 왔느냐"며 빵을 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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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튀르키예 카라만마라슈 지진피해 현장에서 시민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2023.2.10/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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