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안문자] 특별한 생신 잔치
- 23-01-08
안문자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특별한 생신 잔치
기도와 사랑으로 살아온 부모의 모습은 그 발자취를 보면 알 수 있다. 부모는 가진 것으로 자식들의 평가를 받는 게 아니라 사랑과 추억으로 존경받는다. 부와 명예를 가진 부모라도 혈육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본다.
오래 전 우리 부부는 아름답게 살아오신 어느 분의 91세 생신잔치에 초대받은 일이 있다. ‘서프라이즈니까 아버지에겐 모른 척입니다.’ 고령의 아버지 생신을 재미있게 해드리고 싶은 효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하다. 90여 년의 세월이 어찌 한결같은 봄날 이었을까마는 김 장로님은 연세보다 십 년은 더 젊어 보이신다. 자그마한 키에 인자한 모습을 뵐 적마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떠오르곤 했다. 슬하에 6남매를 둔 것, 음악을 사랑하는 것, 형제들이 모이면 노래를 하는 것이 우리와 비슷하다. 김 장로님은 대학 교수이면서도 전공하지 않은 음악에 조예가 깊어 오랫동안 노래로 지휘로 봉사하셨다.
잔칫상은 푸짐하고 깔끔하게 예뻤다. 음식은 마치 꽃을 따다 접시에 담은 듯 눈을 즐겁게 했다. 그래서 아름답고 맛있는 음식을 예술이라고 하나보다. 그 댁 맏며느리가 요리에 고수인 줄은 미처 몰랐다. 여자들은 음식 만드는 이야기로 신이 난다. ‘이건 이렇게 만들고 요건 요렇게 하면 더 좋아.’ 요리솜씨 없는 나는 꿀 먹은 벙어리다.
그러나 웃음과 재담, 정담은 더 달고 향기롭다. 이야기 속에서 배우고 느끼고 반성한다. 만족한 김 장로님은 만면의 웃음으로 말씀하신다. ‘아들도 좋지만 맏며느리가 더 좋아.’ 정성들여 수고한 며느리 칭찬이시다. 식사가 끝나자 노래를 부른다. 모두 음악에 대해서 내노라 한다. 얼마나 흥겹게 부르는지. 김 장로님은 빙그레 웃으며 듣다가도 ‘여기 틀렸어, 다시 불러 봐’ 마치 학교 선생님 같다. 학생들은 잘 부르려고 똑바로 앉는다. 탈무드에 있다는 ‘어떤 사람은 젊고도 늙었고, 어떤 사람은 늙어도 젊었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김 장로님이 이런 분이시네~. 우리 아버지도 그랬는데. 공연히 가슴이 두군 거린다.
메기의 추억, 에델바이스, 언덕위의 집, 인생의 추억, 즐겁게 부르는데 나는 왠지 슬퍼진다. 추억을 불러오는 고운 가락은 슬픔도 따라온다. 특히 “인생의 추억”은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김 장로님이 아주 좋아하신다는 이 노래. 서산에 해 저물듯이/ 나 이미 황혼 속에/ 인생은 사라지는 거/ 추억만이 그리워라/ 비록 세월은 갈지라도/ 어여쁘신 그대를/ 내 마음속에 깊이 품고/ 사랑을 노래하노라/
먼저가신 사랑하는 부인, 유 권사님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본다. 그러기에 추억은 아름답지만 슬프다고 말 하는 것이리라.
혹시 아버지의 고독을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아버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자녀들은 현명한 자녀들이란 말도 있다. 최인호 작가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부르짖었다. ‘어머니는 나를 향해 외롭다고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이제 알아야 한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며 사는 가를.’ 이 순간 왜 작가의 안타깝고 간절한 뉘우침이 떠올랐을까?
그것은 바로 나를 포함한 부모를 모신 모두에게 울리는 경종일 것이다. 부모 공경의 무지가 아니었을까. 물질적으로 섬기면 최고인 줄 알았지, 그 깊은 마음을 헤아리는 일엔 얼마나 소홀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에베소의 약속 있는 첫 계명이 아닌가. 이 계명을 잘 지키면 복을 받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많은 소유가 행복이 아니라 많은 사랑이 행복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생신 잔치는 나에게 특별한 감동과 감사로 가득하게 했다.
잔치를 마감하며 아들이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저희에게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다.” 는 잠언 8장의 말씀을 늘 묵상하도록 권면하셨다고. 나는 새삼 깨달았다. 우리 부모님의 기도와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고. 깨달으면 뭐하나. 우리 부모님은 이미 하늘나라로 가셨는데. 하지만 다시 생각한다.
세월이 흐른 후 우리 아이들은 부모가 들려준 어떤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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