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수필-이희영] 혼란을 즐기자
- 23-01-03
이희영(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혼란을 즐기자
네 살 막둥이와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나왔다. 한쪽 거리는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하는데 길 건너 쪽 하늘은 맑고 파랗다. 아이도 서 있는 자리에서는 눈송이가 얼굴에 와 닿는데 몇 발짝도 안 되는 건너편에는 눈이 오지 않는 게 신기한 모양이다.
“엄마, 여기는 스노우 몬스터야?”
자기가 서 있는 곳은 눈 괴물이 있어서 눈이 오고, 몇 발짝 앞으로 간 곳은 눈 괴물이 없어서 눈이 안 오는 거냐고 물어본다. 날씨에 대한 막둥이 식 해설이 꽤 재미있고 설득력이 있다.
어린아이와는 달리 나는 이런 날씨가 혼란스럽기만 하다. 얽히고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나의 마음 같다. 2022년은 하루하루가 혼란의 연속이었다. 아픈 아이가 혹시라도 코비드에 걸릴까 봐 매일 살얼음판을 지나듯 긴장 가운데 살았다. 팬데믹이 끝나나 싶어 숨을 좀 돌리려 했더니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 사는 게 팍팍해지고, 여름에는 마을 근처의 산불 때문에 마음을 졸여야 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아픈 아이를 데리고 산불대피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팬데믹 이후 학교로 돌아간 넷째가 ADHD라는 판정을 받았다.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아이였는데 더 이상 학교에 오지 않았으면 하는 아이가 되고 말았다. 어딜 가도 귀염을 받던 아이가 갑자기 미운 오리 새끼가 된 듯하다. 하루가 멀다고 들려오는 아이에 관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생소하기만 하다. 혼란스럽다.
어떤 일이 있어도 늘 아이들의 편에 서 있는 엄마가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아이의 과잉행동과 예상치 못한 언행들로 인해 엄마인 내가 흔들리고 있다. 자기 행동은 절대로 고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학교는 계속 가고 싶다는 아들을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 건 알지만 ADHD라는 진단을 막상 받아들이기가 꺼려진다. 카운슬러가 권하는 ADHD에 관한 책을 내가 아직도 사지 않은 것은 이런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생명을 위협하는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성장 과정 중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혼란 속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예상치 못한 산책길의 날씨에 혼란스러워하는 나와 달리 네 살 난 아이는 상황을 금방 받아들였다. 오히려 이런 날씨를 재미있어한다. 한쪽은 스노우 몬스터가 지배하는 지역, 길 건너 다른 한쪽은 몬스터가 없는 구역이라고 이해한다. 스노우 몬스터를 피해서 앞으로 가자고 잰 걸음으로 나를 재촉한다. 고개를 젖혀 쏟아지는 눈송이를 얼굴에 맞아보기도 하고 한달음에 뛰어서 눈이 내리지 않는 건너편으로 가기도 한다. 어린 아들은 자신 앞에 있는 혼란을 즐길 줄 안다. ‘당신의 혼돈을 사랑하라.’ 알베르토 에스피노사의 말이 떠오른다.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던 시인의 메시지가 이제야 어렴풋이 다가온다. 버겁게만 생각했던 나를 둘러싼 혼란들을 네 살배기 아들을 보며 내려놓는다.
어느새 저만큼 뛰어가던 아이가 뒤를 돌아본다.
“어머니, 스노우 몬스터 안 무셔워?”
어머니라 부르는 막내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가득하다. 내게는 요지경 같은 날씨가 아이에겐 재미있는 모양이다. 아이와 함께 걷기를 잘했지 싶다.
2023년 계묘년을 며칠 앞두고 있다. 이번 계묘년은 흑토끼의 해라고 한다. 토끼라고 하면 하얀 토끼만 생각했는데 내년에는 까만 토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우리 막둥이처럼 혼란을 즐기며 한해를 보내리라 다짐한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대한부인회 11일 간병인 모집행사 "시간당 21.17~24.28"
- 생활상담소, 시애틀시 범죄피해자기금 전담기관으로 선정
- 영오션 한국산 광어회와 참돔회 판다
- UW서 해녀 전시회 열린다
- "시애틀 한인여러분 운동도 하고 선물도 받고"
- 김원준 작가 ‘6ㆍ25 및 DMZ사진전’오리건서도 큰 인기
- [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양심과 구원(2)
- [서북미 좋은 시-정혜영] 공작단풍 그 이름을
- 오리건주와 워싱턴주 목회세미나 및 말씀사경회 열린다
- 오리건주서 6ㆍ25 제74주년 기념식 열려(+화보)
- 시애틀영사관 한국국적 일반행정직원 채용한다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시애틀산악회 29일 토요정기산행
- 이장우 대전시장 명예 시애틀한인회원 됐다(화보)
- US메트로 김동일 행장 임기 3년 연장키로
- US메트로은행 '미 전국 중소은행중 실적 탑 20'에 들어
- 이장우 대전시장, 스타벅스 관계자 만나 '로스터리 대전건립 추진'
- 재미 한인 탁구인들의 축제 성황리에 열렸다
- KWA대한부인회 타코마아파트 다음달 신청받는다
- 시애틀-대전 자매도시 35주년 기념행사 화려했다(영상,화보)
- "한국일보 청암장학생 신청하세요"
- 시애틀 한인중고생 위한 SAT캠프 열린다
시애틀 뉴스
- 워싱턴주도 어린이인구 줄어들고 노인들은 늘어났다
- 미국 우표값 또 오른다…14일부터 73센트로
- 재외국민 휴대폰 ‘모바일 재외국민증’ 도입한다
- 부산·울산항~시애틀·타코마항 세계 첫 무탄소 운항
- 미 프로아이스하키 사상처음, 시애틀 여성 코치 선임
- 독립기념일인 내일부터 시애틀에 폭염 닥친다
- 시애틀지역 14살 소년이 음주운전, 경찰과 추격전
- 시애틀지역 내년도 재산세 많이 오를 것 같다
- "알래스카 빙하 80년대 보다 5배 빠르게 녹는중"
- 시애틀 미국서 최고교육 도시중 한 곳
- 올해 7월4일 독립기념일 불꽃놀이 어디서 볼까
- 보잉 문제의 '도어 플러그'공급업체 스피릿 다시 매입한다
- UW 전세계서 7번째로 좋은 대학이다
뉴스포커스
- '읽씹 논란' 한동훈 "김여사, 사과 아닌 '사과 어렵다'고 문자"
- 정부 '해병대원 특검법' 접수…尹, 15일 내 재의요구권 행사 결정
- '김여사 읽씹' 의혹에 '총선책임' 공세 …한동훈 "왜 이 시점에"
- '효성 차남' 조현문 "상속재산 전액 사회 환원…경영권 관심 없어"
- '이재명 습격범' 1심 징역 15년…법원 "민주주의 파괴 시도"
- 민주, 이진숙 방통위원장 지명 '십자포화'…"10번이든 100번이든 탄핵"
- '밸류업 대장주' 타이틀 얻은 KB금융…시총 8위 '셀트리온'까지 제칠까
- 삼성전자 '영업익 10조'에도 웃지 못한 모바일…MX 부문 전년比 30% 감소 추정
- 서울집값 수억씩 치솟는데 '노도강'은 찬바람…'바닥' 반등 언제?
- "의학교육 질 저하 불가피" vs "불안감 조성 유감"
- 적자 걱정하던 해운의 반전…HMM 2분기 영업익 300% 뛴다
- 거야 '해병대원 특검법' 처리 후폭풍…대정부질문 파행·개원식 연기
- 반포자이 분리수거장서 발견된 '골드바' 주인 등장…"자세히 말 못 한다"
- 현직 검사 "탄핵 검사는 증인 자격 없어…청문회 소환 못해"
- "브레이크 밟았지만 딱딱해"…시청역 참사 운전자, 급발진 재주장
- "내가 업소녀라고?…작작해라" 허웅 전 여친, 청담동 아파트 등기 인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