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시-박상화] 계묘를 듣다
- 23-01-02
박상화(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계묘를 듣다
빛이 있으라 말씀이 계실 때
듣는 귀가 있었더니라
그리하여 빛이 있었더니라
빛은 흑암 속에서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더니라
눈앞이 캄캄한 네 속에 빛이 있다고
태초의 첫 말씀이
듣는 이를 위한 위로였더니라
계묘년엔
일 년만 듣자, 일 년만
듣는 것으로 사랑한다고 말하자
왜 이목구비라 하던가
생명이 생기면 먼저 듣기 때문이고
죽어갈 땐 냄새가 먼저 없어지고
말을 못하고 못보고
그리고 듣지 못하면 죽음이기 때문이지
듣는다는 건 자세히 보는 것인데
자세히 보는 게 사랑이기 때문이지
무서운 입의 해가 가고
귀가 큰 해가 온다는 건
가만히 들을 줄 아는 해가 온다는 것.
계묘년
부활의 일요일로 밝아오는 새해,
듣기만 해도 평화는 훨씬 가까워진다
갈라진 입은
오물오물 먹는 데만 쓰자
첫사랑 연분홍빛 살구 꽃잎일 때 그대가
얼마나 듣기에 열중했던지 기억하고
듣는 사랑이 얼마나 그대를 달구었던지 기억하고
재림의 생명도
듣는 일로부터 오는 것을 기억하자
길도 진리도 생명도
말씀을 듣는 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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