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수필-김혜자] 버리고 싶지 않은 유산
- 23-01-02
김혜자 수필가(오레곤문인협회 회장)
버리고 싶지 않은 유산
한 해가 또 지나간다. 손끝으로 잡을 수도 없는 세월이 끊임없이 쉴 사이도 없이 흐른다. 쉽게 지워지지 않은 모든 그리움도 내 뒷모습처럼 사라지고 있다.
나의 손때가 묻은 묵은 물건도 가버린 세월의 흔적처럼 버려야 하는지? 잡을 수도, 잡히지도 않는 세월이 간다. 나는 알 없는 미지의 떨림으로 신년을 맞이한다. 버리고 싶지 않은 유산처럼 내 망막에 새겨진 나의 어린 시절의 그리움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얼마 전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다. 지하철 교통이 잘 되어있기에 자주 이용했다. 매번 느끼는 일이었지만 지하철 안에 사람 대부분 스마트 폰에 빠져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피곤한지 잠시 눈을 감고 있고 책을 보는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다.
이동 통신의 꽂이라고 불리는 휴대 전화기. 다능한 칩과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최고의 우리나라 기술로 천연색 화면은 물론 방송, 사진까지 보고 즐기는 정보시대의 생활 단면이다. 현대인의 삶은 한마디로 초고속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특히 시중에 나와 팔리는 전자제품들의 수명이 짧아지고 있다. 몇 년 전에 산 텔레비전도 지금은 구식이 되어버렸다. 아직도 쓸 만한 것이 애물단지가 되어버리니 보기에 안쓰럽고 곤혹스럽다.
새로운 음악도 하루가 멀게 탄생하여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헌것을 아낌없이 버리고 새것이 나오면 새벽부터 줄을 서서 남보다 먼저 새 물품을 가져야 우월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유행에 첨단을 따라 입고, 쓰고, 신고, 마시며 현대인은 생활한다.
헌것은 무엇이며 새것은 무엇인가? 자주 쓰지 않는 것은 낡은 것이고 새로 만들어진 것을 애용하는 것이 최신식인가? 낡은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새롭게 얻는 정보를 통하여 빠른 의사의 결정을 하며 즐기는 것이 현대인이 되는 지름길인가?
의복도 철마다, 유행을 따라 민감하게 변하고 모든 것들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구매되고 소화된다. 개인이 만든 수예품이나 재봉 기술로 만들어진 옷들은 특수층에게서만 소화할 수 있는 고가의 진품으로 판매된다. 옛날 양복점이나 양장점은 무성 영화 속에서나 찾을 수 있는 추억거리로 되어 가고 있다.
모든 것이 급속도로 변해가는 하루의 생활 속에 지인의 초대로 우연히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있는 옹기 박물관을 간 적이 있다. 미국에 사는 나에게는 새롭게 보는 진귀한 전시관이었다. 20여 년간 수집해온 옹기와 장독대를 보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엄마의 젖가슴에 푸근한 향수가 온몸으로 솟구치고 있었다.
생활문화가 바뀌고 점점 우리에게서 멀어져 간 항아리. 어떻게 항아리 속에 담은 그 많은 말을 다 담아 놓을 수 있을까? 그 속에는 한국 여인의 희비애락의 삶이 있다.
나 또한 진열된 빈 항아리 속에서 지금은 먼 별나라에 있는, 술래잡기하던 내 동생의 얼굴과 나의 어리고 고왔던 시절을 보았다. 놓치고 싶지 않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너무나 귀한 순간들의 행복했던 추억들이 항아리 속에서 풍겨 나왔다.
민족적이고, 전통적이며 토속적인 정서가 듬뿍 담긴 항아리. 된장, 간장, 고추장 그리고 땅을 파고 묻던 김장 김치 항아리. 한 포기, 한 포기 차곡차곡 정성으로 만든 엄마의 손맛으로 만든 사랑의 음식. 물로 채운 항아리 속에 고여 있는 달을 보며 꿈을 그리던 어린 학창 시절.
아침이면 참새가 모여 노래와 세수하던 빗물이 담긴 항아리 뚜껑. 끊어졌던 필름이 연결되듯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린 정겨운 그 시절의 추억이 항아리 속에서 숨 쉬고 있었다. 그리운 가족의 얼굴이 있는 장독대. 그곳에는 고향이 있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끈끈한 정과 가슴을 삭이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었다.
오래된 낡은 물품이나 전통이라도 버리고 싶지 않은 유산이 있다. 헌 것은 무조건 고루하고 새로운 양식의 삶의 패턴은 무조건 고귀한 것은 아니다. 헌 것이라도 간직하고 싶은 것이 있고 소중하게 남기고 싶은 유물이 있다.
포도주와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은 것이고 유명한 예술가의 예술품과 소설과 시인의 글도 있다. 그 중에 하나, 우리 조상의 슬기와 지혜가 담긴 생활이 고스란히 담긴 옹기. 나와 함께 생활해온 아름다운 추억과 그리움이 담긴 소중한 항아리 속에서 잊혀 가는 나의 뿌리를 찾고 싶다.
벽난로에 추위를 녹이며 커피 한 잔에 지난날을 그려본다. 추억은 따뜻한 그리움을 그린 삶의 한 페이지이다. 나의 자취를 남긴 일기장과 같은 과거의 그림 속에 버리고 싶지 않은 나만의 유산은 눈물겹도록 향기롭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시애틀타임스 “양희영, 은퇴하면 안될 실력자다”
- [영상] 샛별예술단 베냐로야홀서 공연 펼쳐
- 지소연 선수, 시애틀한인회 명예회원됐다(+영상,화보)
- 페더럴웨이 한국정원 ‘한우리 정원’ 10월 개장한다(영상)
- 미주한인의 날 워싱턴주 신임 이사장에 김성훈, 대회장 김필재(영상)
- [시애틀 수필-김윤선] 찬란한 빛의 밤
- [신앙칼럼-최인근 목사] 인생은 결단입니다!
- [서북미 좋은 시-김순영] 쉼미 좋은 시-김순영] 쉼
- 서은지 총영사 알래스카서 통일강연회
- 한국 우상임씨, 시애틀서 아코디언 1인극 펼친다
- 이장우 대전시장,경제사절단 이끌고 시애틀온다
- 오레곤한인회 주최 '2024 서북미 오픈골프대회'열린다
- [하이킹 정보] 시애틀산우회 22일 합동캠핑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시애틀산악회 22일 산행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대한산악회 22일 토요산행
- 시애틀레인FC 지소연선수 시애틀한인회관서 팬사인회한다
- 손준호ㆍ김소현 초청 한우리정원 후원음악회 열린다
- 시애틀지역 한인 차세대 리더들 AAPI LEAD 출범식 참석
- KWA대한부인회, 여름방학 청소년 아카데미 개설한다
- 시애틀한인회 22일 유급병가세미나 참석자에게 농구표준다
- 짓궂은 날씨속 제 74주년 6ㆍ25기념식 치러졌다(+영상,화보)
시애틀 뉴스
- 시애틀지역 재산세 감면 혜택자 크게 늘어난다
- 시애틀타임스 “양희영, 은퇴하면 안될 실력자다”
- 양희영 워싱턴주 사할리서 메이저 KPMG 위민스 우승(+영상)
- 워싱턴주 105세 할머니,83년만에 스탠포드 졸업했다(영상)
- 마라톤중 넘어진 시애틀여성, 1,310만달러 받는다
- 시애틀시내 중학교 두곳 학교서 핸드폰 사용금지
- 시애틀 다운타운 힐튼호텔 일본기업에 ‘헐값’에 팔렸다
- 벨뷰 갑부 트럼프 선거자금으로 100만달러 기부
- 시애틀서 다음달부터 ‘타이타닉 전시회’ 열린다
- 아마존 "비닐 포장재 95% 없애고 재활용 종이로 대체"
- 원숭이때문에 UW 영장류연구소장 결국 해임(영상)
- 시애틀지역 경찰관, 마약범 잡으려다 차에 깔려 중상
- '성희롱'의혹받았던 시애틀 전 경찰국장 "난 동성애자다"최초 고백
뉴스포커스
- '아동학대 피소' 손웅정 "손흥민 많이 팼다…훈련하다가 신고당한 적도"
- 19년간 가스라이팅한 무속인 커플…자녀끼리 성관계 강요하기도
- 4월 결혼, 무려 25% 늘었다…대전 40%·대구 37% 급증, 무슨 일?
- 말다툼하던 아내 고속도로서 내렸다가 숨져…남편 처분은?
- 화성 공장 피해자들, 보상 어떻게…고용·산재보험 가입 안됐다
- 손웅정 감독, 아동학대 혐의 피소…"코너킥 봉으로 맞고 욕설 들었다"
- "주변 강요로 음란물 촬영 가능성"…'한선월' 사망 소식에 누리꾼 시끌
- 한동훈, 여의도 '얼굴도장'…나경원·원희룡 '보수 심장' 영남
- 전당대회 막 오른 민주…'이재명 독주' 선거판 '썰렁'
- 반갑다, 아기들…4월 출생아 1만9049명, 19개월만에 늘었다
- 복지차관 "2000명 증원 발표 전 의사단체 집단행동 예측했다"
- "2027년까지 국민 100만명 심리상담 지원"…청년, 2년마다 정신검진
- 현대차 6년 만에 파업 '암운'…자동차 업계 줄파업 우려
- '직원 추행' 오거돈 전 부산시장 만기 출소…심경 묻자 '묵묵부답'
- "최저임금 차별 적용 중단" 기습 시위 민주노총 20여명 현행범 체포
- 'N수생 증가' 대학 입학자 늘었다…자율고 줄고 검정고시 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