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대통령 탄핵 항의 시위 격화로 10대 2명 사망
- 22-12-12
의회 정략 탄핵으로 6년간 대통령 6번째 교체…정국 혼란 지속 불가피
페루 전역에서 의회의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 탄핵에 항의하는 시위가 확산하는 가운데, 11일(현지시간) 수도 리마에서 시위 도중 10대 2명이 숨지고 4명이 부상했다고 현지 당국과 경찰을 인용해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페루 옴부즈만 사무소장 엘리아나 레볼라는 현지 라디오 방송 RPP에 "안데스 지역 아푸리막의 안다우아일라스에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한 가운데 시위대 일부가 총상으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발타사르 란타론 아푸리막 주지사는 지역 방송 카날N에 "4명의 부상자가 보고됐다"며 "이들은 보건소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3명은 두피에 다발성 타박상을 입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페루 공항공사에 따르면 안다우아일라스는 지난 10일부터 지역 공항을 폐쇄했을 만큼 시위가 격화한 상황이다. 일부 시위대는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수적인 송신실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고 공사는 전했다.
앞서 현지 당국은 10일 발생한 경찰과 시위대 충돌로 민간인 16명과 경찰관 4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으며, 이날 추가 사망 및 부상자를 포함해 피해 상황은 더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보수우파가 장악하고 있는 '여소야대' 의회는 이날 오후 비상회의를 소집해 관련 대응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6년째 정국혼란 지속…대통령만 6명 교체
페루에서는 2016년 7월 취임한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대통령이 2018년 3월 수뢰 혐의로 물러난 뒤부터 정국 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의회는 쿠친스키의 직을 승계한 마르틴 알베르토 비스카라 대통령을 2020년 11월 수뢰 혐의로 끌어내린 뒤 그 자리에 마누엘 메리노 당시 국회의장을 앉혔다.
시민들은 이를 용납하지 않았고, 결국 메리노 의장은 일주일도 안 돼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 자리를 이어받은 프란시스코 사가스티 국회의장은 다음 대선을 약속하며 혼란을 진정시켰고, 이듬해 대선을 열어 카스티요 대통령이 당선했는데 의회가 기어코 또 탄핵시킨 것이다.
카스티요 정부의 국정운영은 출범 초부터 순탄치 않았다. 페루의 기득권층은 반기득권·개혁적 성향의 카스티요 대통령과 내각 및 측근을 직겨냥해 왔으며, 그 한 축을 맡은 검찰은 각종 부패혐의 수사로 대통령을 망신 주는가 하면, 다른 한 축인 '여소야대' 의회는 끊임없이 대통령 탄핵을 시도해 왔다.
이에 카스티요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다시 총선을 열려 하자, 의회가 결국 지난 7일 탄핵안을 가결시킨 것이다. 또 카스티요 대통령이 멕시코로 망명을 시도하자, 아예 그를 긴급 체포해 버렸다.
의회는 탄핵안 가결 직후 헌법상 승계 서열 1위인 디나 볼루아르테 부통령을 대통령으로 바로 앉혀버렸다. 이로써 카스티요 정부 붕괴를 공식화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카스티요의 러닝메이트였던 볼루아르테 신임 대통령의 향후 임기는 불보듯 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의회는 결국 지난 6년간 입맛에 맞지 않는 대통령 탄핵 때마다 겨눈 '만능 칼'인 '도덕적 결함' 혐의를 제기해 볼루아르테를 끌어내리고 기어코 기득권층 후보를 앉힐 때까지 혼란을 멈추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페루 정치권의 혼란 이면에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여간 계속된 일본계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의 독재 상흔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재임기간 저지른 부정부패와 납치, 학살, 인권 유린 등 '반인륜 범죄' 혐의로 25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지만, 보수우파에서 후지모리즘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지난 대선에서 그의 딸 게이코 후지모리가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이다 카스티요 대통령에게 석패한 것만 보도 그 영향력을 알 수 있다. 게이코 후지모리는 대표적인 보수 야당 민중의힘(국민의힘으로도 번역)을 이끌고 있다.
◇'이번엔 못 참는다'…무기한 파업 돌입도
들고 일어선 시민들도 더 이상 보수 우파 기득권이 야기하는 정국 혼란을 좌시하지 않을 심산으로 보인다.
원주민을 대표하는 농촌 노동조합 및 단체들은 성명을 내고 카스티요 대통령의 즉각적인 석방과 함께 의회 중단 및 조기 선거, 개헌을 요구하며 오는 13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농촌전선은 의회를 향해 "지난 7일 카스티요 대통령이 의회 중단을 발표하고 법령에 의해 통치하겠다고 말한 건 쿠데타를 저지른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수도 리마에서도 카스티요 대통령의 정당인 자유페루당이 산마르틴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시민들의 이번 반발이 의회 해산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페루 국민 10명 중 9명은 의회를 불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AFP는 전했다.
페루 정치 애널리스트 히오반나 페냐플로르는"볼루아르테 신임 대통령이 조기 총선을 실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볼루아르테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과도 정부 수장으로 남을지, 아니면 카스티요 대통령에게 보장됐던 임기인 2026년까지 집권할지 둘 중 하나다.
페냐플로르는 "볼루아르테는 자신의 역할이 새로운 총선을 촉진하는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며 "안정을 제공하고 새 내각이 과거와 다르다는 걸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원주민계 혈통에 시골 교사 출신인 카스티요 대통령은 교원노조 지도자로 이름을 알린 정치신예로 부패와 기득권 타파,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재분배 등을 기치로 돌풍을 일으켜 지난해 당선했다.
그러나 '17개월 천하'로 끝난 임기는 자신 및 가족에 대한 6차례 검찰 조사, 연료·비료 가격 폭등으로 일어난 대규모 시위, 여소야대 의회에서의 권력 투쟁 등으로 얼룩졌다.
일각에서는 카스티요 대통령이 국가경제 '최대 돈줄' 광물·석유·수력·가스·통신 등 주요 산업 국유화를 바탕으로 한 국가 주도 경제 개혁을 추진하려다 기득권의 역풍을 맞은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페루를 비롯한 남미 대부분의 자원 부국에선 백인계 기득권층이 유럽 등 서방 기업들과 결탁해 부를 독점하는 문제가 사회 건전한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고질병으로 남아 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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