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시-김재완] 사랑에 대하여
- 22-11-13
김재완(화가ㆍ시인) 번역
사랑에 대하여
사랑이 그대에게 손짓하거든 잠잠히 따라가십시오.
비록 그 길이 험하고 가파를지라도.
사랑이 나래로 그대를 감싸면 그냥 맡기십시오.
설령 그 나래 안에 감추인 비수에 상처를 받을지라도.
그리고 사랑이 그대에게 속삭이면 그냥 믿으십시오.
사랑의 속삭임이 북풍에 정원이 폐허가 되듯
그대의 꿈을 산산이 부숴버린다 해도.
사랑은 그대에게 왕관을 씌워주기도 하지만
고통의 가시관도 씌워줍니다.
사랑은 그대를 자라나도록 하겠지만
가지를 쳐내기도 합니다.
사랑은 그대 머리 꼭대기 위로 올라가
햇빛에 떠는 아주 작은 가지조차 쓰담아주겠지만
그대의 깊은 곳 뿌리로 내려와
뿌리들을 흔들어 뽑기도 합니다.
곡식을 추수하듯 사랑은 그대를 자신에게로 거두어들입니다.
그리고 그대를 타작하여 벌거벗게 합니다.
그대를 키질하여 감싸던 껍질들을 날려보냅니다.
맷돌을 돌려 그대의 하얀 가루를 만듭니다.
그대를 주물러 부드러워질 때까지 반죽합니다.
이제 그대를 사랑의 화덕에 넣어
신의 제사에 쓰일 거룩한 빵을 구워냅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이
그대로 하여금
그대 가슴의 비밀을 알게 하여
그대가 위대한 생명의 심장 파편이 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가 두려워하므로
사랑의 평온과 쾌락만을 얻고자 한다면
차라리 그대의 껍질로
알몸을 가린 채
사랑의 타작마당을 피해 멀리 도망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웃고자 해도 실컨 웃지 못하고,
울고자 해도 온 눈물을 토해내지 못하는
그런 계절 모르는 세상을 향해서요.
사랑은 자신밖에는 줄 수 없고, 자신밖에는 받지 못합니다.
사랑은 아무것도 갖지 않고 아무의 전유물도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사랑으로써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사랑에 빠질 때
‘신이 내 심장에 계신다’고
말하지 말고
‘내가 신의 가슴에 있다’라고 말하십시오.
사랑할 때 그대가 사랑의 노정을 지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대가 진정으로 사랑할 때
사랑이 그대의 길을 가리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자신을 충족시키는 것 말고는 달리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만약에 그대가 사랑하면서
또 다른 욕망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경우가 생긴다면
이런 것들을 구하세요.
얼음이 녹아서 밤에게 노래를 부르는 샛강처럼 되기를.
너무나 다정하므로 그 아픔도 알게 되기를.
진정한 사랑을 깨달아서
그 상처조차 받게 되기를.
그리하여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피흘릴 수 있기를.
새벽에 가슴에 날개를 달고 일어나
사랑할 수 있는 새 날이 온 것을 감사하기를.
한 낮엔 사랑의 환희를 되새김질하며 쉬기를.
저녁엔 집에 돌아오며 감사의 마음이 충만하기를.
그리고 그대 가슴에 사는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입술로 찬미하면서 잠들기를.
**김재완 시인이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The Prophet, 1923)에서 발췌해 기존 번역본보다 더 시어적인 감각으로 번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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