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정동순] 둥근 사각형
- 21-04-05
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둥근 사각형
웃픈 현실, 아는 것이 힘인가? 모르는 게 약인가? 사람들의 말 중에는 모순된 조합이 많다. 사랑과 미움은 반대인 것 같아도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점에서 시작된다. 둥근 직사각형(Rounded rectangle)도 마찬가지다. 둥글면 둥글고, 사각형이면 사각형이지 어떻게 둥글면서 사각형이란 말인가. 각이 져야 사각형이다. 하지만 수학적 정의로 설명할 수 없는 둥근 사각형이 엄연히 존재한다. 날카로운 모서리는 싫은데 사각형은 좋아. 그럼 날카로운 모서리를 좀 둥글려 볼까? 누군가 생각해냈다. 그리하여 둥근 사각형이 탄생했다.
적응하되 동화는 되지 말아라. 교육대학을 졸업할 무렵, 현장에 나가는 우리에게 모교의 김영일 교수께서 당부한 말씀이다. 적응한다는 말은 기존의 교육 환경에 익숙해지라는 말인가? 동화되지 말라는 말은 기성세대를 답습하지 말라는 말인가? 이 알쏭달쏭한 문장을 나는 아직도 가슴에 담고 뜻을 되새겨 본다. 이 문장은 이민자인 나에게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수많은 인종이 어우러진 타국에서 사는 일은 잠시 여행하면서 느끼는 경험과는 천양지차다. 이민자로서 생활은 내 안에 있는 나 자신과의 모순을 치열하게 겪는 과정이다. 나는 토종 한국인의 행동 양식으로 미국 생활을 할 수 없다. 한국에 온 미국인이 서울 한복판에서 미국식으로 거침없이 행동한다면 대부분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반대로 미국인과 똑같이 행동하며 살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얼마만큼의 한국인의 기질을 가지고 얼마만큼 미국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 외줄 타기 기술이 필요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 가치관과 행동이 모순될 때가 자주 있다. 교육방식이나 문제해결에 접근하는 방식이 내 신념과 충돌할 때 나는 많이 고민한다. 일례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는 젠더 X나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있다. 중고등 학생들이 어떻게 그렇게 일찍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신하며 자신의 성을 결정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수학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문제 푸는 훈련을 중요시하지 않는 점도 동의하기 어렵다. 교사로서 내 믿음은 수학도 개념을 배운 후에는 운동이나 악기를 배우는 과정처럼 충분히 연습해야 한다.
이민 생활에서 내 아이들이 올바른 정체성을 갖도록 교육하는 일은 큰 과제였다. 아이들을 한국 호적에도 올렸다. 그리고 증명서를 발급받아 앨범에 넣어 간직했다. 봐라, 너희는 한국 사람이다. 그러니 한국말을 잘 배우고 한국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여차하면 그 서류를 보여줄 참이었다. 엄마가 한국 사람, 아빠가 미국 사람인 아이들은 교사인 나를 따라 십 년 이상 주말 한국학교에 다녔다. 내가 한국 국적을 이탈하면, 조국을 배신한 것 같아 국적을 선택하는 일도 오랫동안 뭉그적거렸다. 그리고 아이들이 반반이(half & half) 아니라 100% 한국인, 100% 미국인으로 자라 주길 소망했다.
아이들이 십 대가 되니 이중국적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중국적 때문에 오히려 한국에서의 활동에 제약이 따르고, 미국에서도 중요한 정부 기관에 취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나고 자란 이곳에서 학교를 마치고 직장에 다닐 것이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물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 즈음 우리 가족의 100% 한국인, 100% 미국인이란 구호도 퇴색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좀 풀어주었다. 아이들은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목표에는 다가가지 못했지만,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카톡으로 문자도 주고받는다. 한국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거나 신문에 궁금한 말이 있으면 물어보거나 찾아서 공부하는 정도다.
음과 양의 순환처럼 자연도 모순 속에서 균형을 유지한다. 자연의 흐름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국물이 없는 짜파게티와 얼큰한 국물 맛에 먹는 너구리가 만나 짜파구리란 조합이 나오기도 한다. 미국에서 살면서 나는 20년째 주말 한국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이렇게 영어가 아닌 한글로 글을 쓴다. 그리고 내 글이 한국인과 미국인의 조합, 나의 독특함을 알리는 도구가 되기를 원한다.
이민자의 삶도 어쩌면 둥근 사각형과 같은 삶이 아닐까. 사각형의 성질을 간직하면서도 원의 성질 대로 또 둥글어야 하는 생활이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간직해야 하고, 미국 시민으로 사는 생활 규범도 반듯하게 지켜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선택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 이는 둥근 사각형처럼 모순된 조합이다. 그러나 둥근 사각형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새로운 미적 조합이다. 이민자로서 나의 정체성이 내 안에서 불화하지 않고 둥근 사각형과 같은 조합이면 좋겠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한국 전국체전 참관인단 모집…한국관광도 함께 실시
- 이번 주말 SNU포럼 강사는 세계적 뇌과학자 이진형 교수(영상)
- 상담소 “그로서리 백 기부 받습니다”
- 재미한국학교협의회 제42회 정기총회 및 학술대회 성황리에(영상)
- S미술학원 권선영 원장, 롯데호텔 시애틀서 초상화전(영상)
- 워싱턴주 한인미술인협회 공모전 당선자와 장학생 발표
- 올해 거북이마라톤 500여명 참석해 대성황 이뤄(+영상,화보)
- 미술인협회 벨라 김 전 회장 ‘의미있는’ 작품 전시한다
- [시애틀 수필-안문자] 초록 향기 속에서 타샤를 그리며
- [신앙칼럼-최인근 목사] 다수가 이기는 세상
- [부고] 포틀랜드 영락교회 백일성 장로 별세
- [하이킹 정보] 시애틀산우회도 내일 거북이마라톤 참가키로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시애틀산악회 6일 거북이마라톤 참가
- 대한부인회 11일 간병인 모집행사 "시간당 21.17~24.28"
- 생활상담소, 시애틀시 범죄피해자기금 전담기관으로 선정
- 영오션 한국산 광어회와 참돔회 판다
- UW서 해녀 전시회 열린다
- "시애틀 한인여러분 운동도 하고 선물도 받고"
- 김원준 작가 ‘6ㆍ25 및 DMZ사진전’오리건서도 큰 인기
- [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양심과 구원(2)
- [서북미 좋은 시-정혜영] 공작단풍 그 이름을
시애틀 뉴스
- 머서 아일랜드 “물사용 즉각, 무조건 줄여주세요”
- 시애틀 사무실건물 아파트로 전환하면 특혜준다
- 시애틀서 렌트로 살기에 정말로 안좋다
- 보잉기종 또다시 이륙 도중 바퀴 떨어져 나가
- 시택 독립기념일 쇼에서 드론 55대 호수로 추락
- 시애틀지역 폭염 내일 절정 달한다...일부는 100도까지 치솟아
- 아담 스미스 워싱턴주 연방하원의원도 “바이든 사퇴하라”
- 상반기에는 엔비디아가 미증시 주도했지만 하반기에는 OO
- 엘크와 충돌한 워싱턴주 여성,다른 차에 깔려 숨져
- <속보> 얼더우드몰 16살 총격범 바로 풀려났다
- 워싱턴주도 소형 원자로 12개 추가 설치한다
- 워싱턴주 삼진법 부작용 개선되지 않았다
- 워싱턴주 불체자도 부동산 에이전트 면허 가능해진다
뉴스포커스
- "韓 백만장자, 4년 뒤 164만명"…증가율 27% '세계 6위' 전망
- 젤렌스키 손 맞잡은 尹 대통령…나토 정상회의 만찬장서 조우
- "尹탄핵 청문회 위헌"…국힘, 권한쟁의 심판 청구한다
- 쯔양 "전 남친에 40억 뜯겼다…폭행·협박에 술집 일까지 했다"
- "해병대원 특검 필요" 69%…한동훈 대안 찬반 '팽팽'
- 주먹으로 '여성 폭행' 징맨 황철순, 1심 징역 1년…법정구속
- 5월 나라살림 74.4조원 적자…역대 두번째 적자폭
- '美 훈풍' 코스피 2890 돌파…2년 반만에 최고
- "국민연금, 3년 뒤엔 보험료 수입만으로 연금지출 감당못해"
- "먹고살려면 나와야지"…32도 '폭염'에도 거리로 나선 노인들
- 윤 대통령, 美워싱턴으로 출발…나토 정상회의서 안보 협력 논의
- 진중권 "김건희와 57분 통화…'주변 만류로 사과 못해', '韓 화 많이 나' 토로"
- 의대 2학기 등록 학년말까지…추가 의사 국시 적극 검토
- "금리 내린다니 집 사볼까"…주담대 한달새 6.3조 늘었다
- 취업자 두달째 10만명 밑돌아…건설·자영업 한파 계속
- '연봉 1억' 현대차 킹산직…2026년까지 1100명 또 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