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문희동] 손
- 22-10-31
문희동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손
코로나 팬데믹 이후 다들 손 씻기에 관심이 많다. 나뿐이 아니라 다들 손 씻기가 몸에 익숙해졌다. 그 때문인지 감기 환자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알게 모르게 손을 통해 세균이 번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내가 어렸을 땐 물이 귀하고 위생 관념도 부족해서 손씻기에 소흘했다. 겨울이 되면 논이 얼음판으로 변하여 동네 아이들과 온종일 장갑도 없이 썰매를 타며 놀았는데 그런 연유로 손이 터져 피가 자주 났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더운 물에 손을 담그게 하고 때를 불려 밀어냈다. 그리고 나면 손등 곳곳에 칼자국처럼 갈라져 있었다. 그런 손등에 소고기 기름을 녹여 바르면 따갑고 아파서 울곤 했던 때가 아스라이 떠오른다. 매일 더운 물로 샤워하는 요즘 아이들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손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그리고 있다. 어떤 손은 투박하면서도 마디가 굵고 또 어떤 손은 마디가 가늘고 결이 부드럽다. 어느 손이 더 열심히 살았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투박하고 거센 피부에서 성실한 삶을 보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손이 작으면 체격도 작아 보이고 손이 크면 체격도 건강해 보인다. 또 손바닥 손금은 운명의 지도라 하며 손가락의 지문은 사람마다 갖는 몸의 개성을 나타낸다.
손은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는 가장 최전선에 있는 것 같다. 서로 악수하다 보면 얼굴 모습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손의 감촉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반가운 사람과는 손을 꽉 쥐고 힘 있게 흔들 땐 나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읽을 수 있다. 그러면 같은 감정을 전하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을 준다. 이런 경우엔 말보다 손이 더한 진실성의 전달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엔 악수가 사라지고 주먹으로 대신 인사를 하는 우스꽝스러운 세상이 됐다. 그러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도 멀어지는 느낌이다. 체온을 나누는 일이 사람의 관계를 따뜻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손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들이 분포되어 있다. 그런 신경 흐름에 착안하여 한의학에서는 수지침을 탄생시켰다. 내가 어렸을 때 음식으로 체했거나 또는 소화가 잘 되지 않을 때면 할머니가 내 배를 손으로 문지르면서 “내 손은 약손이요, 내손은 약손이요”하셨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트림이 나면서 낳은 경험이 있었다.
한의사들은 손바닥을 보고 환자의 건강상태를 짐작하기도 한다. 손을 잘 관리하는 것은 인생을 관리하는 것과 비교하기도 했다.
나는 발보다 손이 더 소중한 것을 체험했다.
일 년 전 80세 된 작은 처남이 옷을 입다가 뒤로 넘어지면서 침대에 부딪혀 머리를 다쳤다. 두 번이나 뇌수술을 받았지만 양팔이 마비되어 갑자기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불구자가 되었다. 손까지 마비되니 물건을 잡을 수도 없고 바닥을 딛고 일어날 수도 없는 처지가 됐다. 양팔이 몸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침대에만 누워 지내는 답답한 삶이 계속 됐다. 게다가 혼자서는 거동을 하지 못하니 먹는 것부터 화장실 가는 소소한 문제까지 식구들의 손을 빌려야 했다. 불운이었다. 코로나팬데믹이 덮치는 바람에 좋은 의사를 만나 재활 병원에서 기본적 생활 방법을 익혀보지도 못했다. 코로나 환자가 밀려들어 그나마 퇴원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온전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저 세상으로 갔다. 나는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 미안함에 아쉬움이 남는다.
호주 출신 닉 부이치치(Nick Vujicici)는 ‘바다표범 손발증’을 앓는 특수지체장애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홀로서기 훈련으로 엄청난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마침내 두 개의 발가락으로 못하는 것 없이 가정생활도 어려움 없이 하고 있다고 한다. 몇 년 전에 우리 교회에서도 강연한 적이 있어 그의 모습을 봤다.
작은 처남도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시련과 고난 극복을 위해 나름대로 서로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삶에 희망을 품지 않았을까. 그러다 운이 좋아 손만이라도 자유롭다면 휠체어를 타고서라도 움직일 수 있지 않았을까. 새삼 손의 무게가 느껴진다. 건강한 육체를 위해서는 신체 어느 한 부분인들 중요하지 않을까마는 건강한 손을 갖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마지막까지 서로 따뜻한 체온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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