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제재는 해야겠고, 원유는 필요하고…美, 가격상한 '가닥'
- 22-06-15
당국자 "유가 급등·글로벌 침체 피하면서도 러 원유판매 수익 줄이는 게 목표"
전문가 "실제 적용 어려울 듯…러시아가 안 지키면 그만"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세계 경제가 불황의 그늘로 접어들면서 서방 국가들의 대러 제재도 딜레마에 봉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 원유수출국으로, 현재 고유가 속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마냥 러산 원유 거래를 막을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러시아산 원유에 가격 상한제를 적용해 어느 정도의 공급은 허용하되 판매 수익을 줄이는 방안을 유럽 및 아시아 동맹국가들과 검토 중이다.
◇'금수'→'수익제한'…조금씩 바뀌는 美 대러 제재 문법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월리 아데예모 미 재무부 부장관은 14일(현지시간) 미 상원 예결소위에 출석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원유 생산량과 수출량이 줄었지만 고유가가 이를 상쇄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미국은 유럽 및 아시아 동맹국들과 러시아산 원유 지불 가격에 상한을 둬 고유가로 인한 판매 수익을 제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아데예모 부장관은 설명했다.
이 방안의 상세 내용은 상원 의원들에게만 비공개 브리핑할 예정이라며 이 자리에서 추가 언급은 삼갔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그는 "목표는 러시아가 앞으로 원유를 판매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줄이는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러시아는 자신들이 저지른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고유가의 직접적인 혜택을 보는 셈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이던 지난 3월 8일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전면 수입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같은 날 영국 정부도 러산 원유 수입 중단 계획을 밝혔고, 그로부터 석 달 만에 유럽연합(EU)도 동참했다.
다만 미국의 금수엔 6월24일까지 적용되는 제재 유예가 있었다. 영국은 대체재를 모색하며 연말까지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했고, EU는 연말까지 해상운송분만 전면 금수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미국 역시 유럽과 동조한다는 명목에서 유예기간을 연장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의 에너지 판매 수익이 개전 직전보다 오히려 상승한 배경엔 고유가와 인도·중국 등의 대량 구매 협조 외에도, 이 같은 '꽤 넓은 예외의 구멍'이 있던 것이다. 핀란드 에너지청정공기연구센터(CREA)에 따르면 지난 100일간 러시아가 화석연료 수출로 벌어들인 돈은 930억 유로(약 125조3100억 원)에 달했다.
◇옐런 "유가 급등·글로벌 침체 피하려면 러산 원유 흐름 유지할 수밖에 없어"
'금수'라는 강력한 대러제재의 언어가 '수익제한'으로 완화된 데에는 세계 경제가 침체기로 접어드는 상황에 대한 현실적 고민이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그로 인한 공급망 경색 등 파생 결과에 더해,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 등 그 여파로 세계경제는 불황 속 물가만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직면할 것이란 우려마저 제기된다.
미 에너지 시장 정보 제공업체 아거스미디어에 따르면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이달 초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이 같은 고민을 제법 솔직히 털어놨다.
당시 옐런 장관은 Δ관세와 Δ바이어 카르텔 및 Δ가격상한제 등이 논의되고 있다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러시아산 원유의 흐름(거래)을 유지해 글로벌 물가를 낮추고 전 세계적 침체와 유가 상승을 야기할 수 있는 (가격) 급등은 피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 당국자들이 세계 시장에서 러산 원유 거래 전면 금지를 추진할 수 없는 건 이 경우 공급량이 줄어 유가가 더 폭등하고, 그렇게 되면 러시아는 수출량 감소로 인한 손실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거스미디어는 미국이 이란과 베네수엘라에도 원유 제재를 해본 경험이 있지만 구매 자체에 상한을 두면 그만이던 당시와 이번은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해 450만 b/d의 원유와 270만 b/d의 석유제품을 수출했던 러시아는 이란·베네수엘라와는 사이즈가 다르다는 것이다. 또 지금은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에서 회복 국면에 접어들어 넘치는 원유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가격상한제, 효과 있을까
아거스미디어는 새 제재 방식에 대해 "러산 원유 수출에 대한 '이론적인' 가격 상한선은 현행 시장 가격 이하로 설정될 것이며, 이 상한선보다 높은 금액을 지불하는 구매자에게는 제재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메커니즘은 '이론적으로는' 역외(extra-territorial) 제재를 불평해온 비서방 국가 바이어들의 정치적 분열을 완화할 방책으로 평가된다.
또 (미국이 추구하는 대로) 러산 원유 수익은 줄이면서 갑작스런 글로벌 공급 충격은 예방하는 2가지 목표를 동시에 충족시킬 대안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러시아가 그런 제한을 준수할 때만 그렇다(효과를 본다)"는 것이라고 매체는 짚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브라이언 오툴 선임연구원은 "실제로는 (가격 상한제를) 실행에 옮기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불가능하진 않더라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미국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는 미국 은행들이 러시아산 석유 수출과 관련된 모든 거래를 처리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덧붙였다.
◇바이든도 언급…실행 가능성 높을 듯
옐런 장관과 아데예모 부장관에 앞서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 1일 기자들에게 러산 원유 판매 가격을 크게 낮춰 거래하는 방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스위치를 클릭해 휘발유 가격을 낮춘다는 건 단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면서 "석유를 제한된 가격으로 구매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많은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전쟁을 이겨내려 노력하고 있다. 항구를 어떻게 개방할지, 수만 톤의 곡물을 어떻게 얻을지 연구하고 있다"며 "휘발유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이 운을 뗀 러산 원유 가격상한제는 이미 그 실행방안이 미 재무부 테이블에 확정돼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아데예모 부장관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일단 금융기관들은 제재를 준수하고 범위를 파악해본 경험이 많지만 부동산 등 다른 부문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 주목, 최근 비금융권 기업들에 제재 위반 결과를 이해시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다만 미 재무부가 계속해서 러시아와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과 국가에 세컨더리 제재를 부과할 조짐은 없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아데예모 부장관은 그저 제재를 받는 러시아 신흥재벌(올리가르히) 요트 관련 기업 등 개별 기업에 추가 조치를 하는 정도만 언급했다.
아울러 아데예모 부장관은 디지털 자산이 제재 회피에 사용되지 않도록 의회와 협력해 암호화폐 시장과 거래소에 대한 규제 권한을 더 많이 획득하고 싶다고 밝혔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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