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려면 나와야지"…32도 '폭염'에도 거리로 나선 노인들

"다른 일자리 구하기 힘들어…전단 알바 할 수 있어 감사할 뿐"

폭염보다 장마가 더 힘들어…"비 오면 전단 못 돌려"


"우리 손자 둘이 젊은 엄마가 죽고 없어.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돼요."


10일 오전 10시 10분 2호선 강남역 11번 출구. 노년 여성 A 씨는 무더운 날씨에 장갑까지 끼고 시민들에게 헬스장 광고 전단을 건넸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목에는 손수건까지 둘렀지만, 따가운 햇빛을 피할 수는 없었다. A 씨는 더운 날씨에 전단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힘들다면서도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폭염·장마에도 거리로 나선 노인들


이날은 장마가 물러나면서 서울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최고 기온은 32도로 야외에 1분만 서 있어도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였다. 뜨거운 날씨에도 강남역 부근에는 4명이 전단을 돌리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70대 이상 노년 여성으로 지하철역 출구에서 출근하는 시민들에게 분주하게 전단을 돌렸다.


A 씨는 전단을 돌려 번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세금과 연체 이자를 낸다. 여력이 있다면 손자들에게 만 원씩 용돈을 준다. 그는 현재 무허가 주택에 살고 있어 1년에 세금을 500만~600만 원씩 내야 한다고 푸념했다. A 씨는 "할머니가 돈 한 푼이라도 주면 좋아서 애들 입이 이렇게 벌어진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A 씨는 손자들 생각에 비가 와도 아르바이트를 쉬지 못한다. 직장인의 출근시간·점심시간·퇴근시간에 맞춰 2시간씩, 하루에 총 6시간을 일한다. 그는 "6시간 동안 전단을 돌리면 진이 빠져서 집에 들어갈 땐 다리가 아파서 50m 가다가 쉬고, 또 50m 가다가 쉰다"고 토로했다. A 씨는 더우면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비가 오면 방수가 되는 모자를 쓰고 일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60세 이상 고령자의 주된 생활비 마련 방법은 본인 및 배우자 부담이 7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본인 및 배우자 부담 비중은 2015년 66.6%에서 꾸준히 높아지는 추세다. 그러나 2020년 기준 취업 노인의 48.7%가 단순노무종사자로, 노인들은 주로 전단 아르바이트 같은 저임금·저숙련 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노인들이 생활비 마련을 위해 폭염에도 야외 노동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신분당선 강남역 5번 출구에서 필라테스 광고 전단을 건네던 김순애 씨(76·여)는 출근한 지 1시간 30분 만에 손수건을 땀으로 흠뻑 적셨다. 그럼에도 김 씨는 "이 나이에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비가 와서 전단을 못 돌리면 수입이 줄어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양질 일자리·소득 보장해야"


통계청에 따르면 노인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2011년 56.9%에서 2022년 57.1%로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가파르지만, 2021년 기준 OECD 주요국 중 노인빈곤율은 1위다. 전문가는 노인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궁극적으로는 소득 보장이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박승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노인들은 노동력의 질이 떨어져서 시장에서 노동력이 저임금에 팔릴 수밖에 없다"며 "(정부에서 제공하는 노인 일자리는) 하고 싶은 사람들을 다 포용하지도 못하고 노인들을 훈련하고 맞는 일자리를 제공해 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한국은 연금이 잘 갖춰져 있지 않고, 노인을 공공부조 대상으로 포함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하는 노인들을 위해 소득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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