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상인가 가족해제인가…패륜자식 상속 배제·친족 재산범죄 처벌

친족간 재산범죄 처벌 면제 '친족상도례' 71년 만에 헌법불합치

"사회적 공감대 반영" "가족 해체 우려"…유책주의도 파탄주의로 바뀌나


헌법재판소가 패륜 자식에 대한 상속 배제를 허용한 데 이어 최근 가족 재산범죄를 처벌하지 않는 '친족상도례' 조항에 대해 71년 만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는 등 가족 관계와 관련해 잇따라 전향적인 판결을 내리고 있다. 


법조계에선 '가족 관계 변화 등 시대상 반영'이라는 반응과 함께 '가족 해체를 촉진할 수 있어 우려된다'는 입장도 공존한다. 나아가 이혼제도와 관련해 60년간 이어 온 '유책주의' 원칙에도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모인다.


◇친족상도례, 71년 만에 헌법불합치…유류분·제사 주재자 등 새 판단도


헌재는 지난 27일 친족상도례를 규정한 형법 328조 1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1953년 형법 제정 당시 마련된 친족상도례는 가족, 친족 간 절도·사기·횡령·배임 등 재산범죄에는 형을 면제하도록 정하고 있다. '법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다'는 고대 로마법 정신에서 기원했는데, 국가형벌권으로 인해 가정의 평온이 깨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번에 헌재는 가족 규모가 축소된 현대 사회에서는 넓은 친족관계를 한데 묶어 일률적으로 처벌을 면해준다면 형사 피해자인 가족 구성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이 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지난 4월 고인의 뜻과 관계없이 배우자·자녀·부모·형제 등에게 일정한 유산 상속분을 보장하는 '유류분 제도'에 대해서도 위헌 및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1977년 민법에 유류분 제도가 도입된 지 47년 만에 나온 결정이다.


헌재는 당시 "피상속인을 장기간 유기하거나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하는 패륜적 행위를 일삼은 상속인에게도 유류분을 인정하는 것은 국민 법 감정과 상식에 반한다"고 했다.


또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5월 부모의 제사에 대한 권리를 갖는 '제사 주재자'는 성별과 관계없이 연장자가 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장남을 제사 주재자로 삼던 대법원 판례가 15년 만에 깨진 것이다.


아울러 8촌 이내 혈족에게 친생자 관계 존부 확인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있다는 기존 판례를 40년 만에 뒤집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20년 6월 독립유공자 유족 자격을 구하는 소송에서 소송을 낸 독립유공자의 증손자에게 소송 당사자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 사회 가족 형태가 이미 핵가족화됐다는 이유에서다. 


◇가족법 변화에 "시대 흐름" "가정 해체" 분분…'유책주의'도 바뀌나


이 같은 판례·결정례 흐름에 부장판사 출신 이현곤 변호사(법무법인 지우)는 "오랫동안 논의되던 사안에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방향으로 결론이 나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 현직 판사는 "유류분 인정을 아주 예외적인 경우만 했던 것처럼 친족상도례도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인정해야 한다. 부자지간이나 부부 관계 등에도 친족상도례를 배제해버리면 가족 해체를 촉진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한편 가족 관계에 관한 기존 판례들이 뒤집히면서 60년간 이혼제도의 근간을 이뤄온 '유책주의' 원칙 대신 '파탄주의' 원칙이 채택될 지도 주목된다.


대법원은 '한쪽 배우자나 그 배우자의 가족이 결혼생활을 망쳤는데도 결혼생활을 망친 배우자 쪽이 이혼을 요구하는 경우 이혼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유책주의를 이혼제도의 근간으로 유지해 왔다. 남편이나 시댁이 잘못해 놓고도 잘못 없는 부인을 맨몸으로 내쫓곤 했던 과거 가부장주의 사회의 악습을 막겠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이미 완전히 갈라선 부부에 대해 법적인 결혼상태 유지만을 강요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많은 의문이 제기됐다. 하급심에서는 종종 파탄주의를 인정하는 듯한 판결을 내리며 예외를 더 큰 폭으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변화시켜 왔다.


대법원은 2015년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협의이혼제도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굳이 파탄 제도를 인정할 필요가 없다'면서도, 유책배우자의 책임 정도,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 계속 의사 및 유책배우자에 대한 감정 등을 고려해 예외를 판단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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