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노 '세기의 이혼' 판결에 등장한 '정경유착史'…'비공개' 원칙 어겼나

법원 "노태우 자금 유입·방패막이 역할"…SK "비공개 원칙" 반발

"재산 분할 이유 설명 때문에 불가피…판결문 유포자 처벌 힘들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항소심 판결이 법조계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1조4000억 원에 달하는 재산 분할 액수부터 1심보다 20배 늘어난 20억 원의 위자료 역시 '파격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가 SK그룹 재산 형성 과정에서 있었던 '정경유착'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비공개 가사 재판 원칙을 위배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또한 최 회장 측에서 판결문 유포자를 고발하겠다고 밝히면서 법적 처벌이 이뤄질 것인지도 관심사다.


이에 대해 법조계는 이번 이혼소송에 전 국민적 관심이 몰렸고 최 회장과 노 관장도 이혼소송 '당사자'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아 비공개 원칙이 적용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실제 처벌 사례도 드문 것으로 전해졌다.


◇ 법원 "노태우 자금 유입·방패막이 역할"…SK "비공개 원칙" 반발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김시철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항소심 선고 당시 재산 분할 대상이 된 SK 주식에 대해 "SK 상장과 가치 증가에 1991년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최 회장 부친(최종현 전 SK그룹 선대 회장)에 상당한 자금이 유입됐다"고 판단했다.


이어 "태평양증권을 인수하는 과정이나 이동통신 사업 진출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등 무형적 기여가 있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중 300억 원이 SK 쪽에 유입됐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과거 '정경유착'을 인정한 셈이다.


최 회장 측은 사생활의 영역인 가사 사건을 본인 의사가 관계없이 외부에 공표했다며 반발했다. SK 측은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편향적으로 판단한 것은 비공개 가사 재판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 행위"라는 입장을 냈다.


가사소송법 10조는 '가정법원에서 처리 중이거나 처리한 사건에 관해서는 성명·연령·직업 및 용모 등을 볼 때 본인이 누구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정도의 사실이나 사진을 신문, 잡지, 그 밖의 출판물에 게재하거나 방송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법원은 선고에 앞선 최 회장 측의 판결문 비공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판결 직후 이를 내부 전산망에 등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 측 반발에도 법조계에서는 두 사람의 이혼 소송이 이미 전국민적 관심사가 됐고, 개인뿐 아니라 기업 자산이 분할 대상에 포함된 만큼 구체적인 판결 내용이 공개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또 가사소송법 조항은 당사자의 소송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 적용할 수 있어 이번 사건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왔다. 최 회장과 노 관장 측은 앞서 여러 차례 소송 사실과 주요 요지를 직간접적으로 알린 바 있다.


채우리 변호사는 "비자금 부분을 짚지 않으면 1심과 다르게 판단하기 어려우니 껄끄럽더라도 짚을 수밖에 없었다"며 "이례적으로 심리 과정을 조목조목 이야기한 이유"라고 평가했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법리적으로 구체적인 분할 내역을 분명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는 데다 중요한 선례가 된다고 본 것 같다"며 "공개 재판인 만큼 보도 금지 원칙이 적용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가 판결문 비공개 요청을 거부한 데 대해서도 황수철 변호사는 "최 회장 측에서 본인들에게 불리하게 될 것을 생각하고 과한 요구를 한 것"이라며 "재판장이 받아줄 의무는 없다"고 설명했다.


◇ SK "판결문 최초 유포자 고발"…실제 처벌 가능성은


최 회장 측은 판결 이후 법원은 구체적인 판시 내용이 알려지자 항소심 판결문 유포자를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지난 1일 밝혔다.


그러나 실제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는 게 중론이다. 당초 법원이 판결문 비공개를 거부한 데다 판결문 유포와 형사상 명예훼손의 법리적 연관성이 모호하다는 얘기다.


채 변호사는 "내밀한 영역인 가사사건은 본인 의사가 관계없이 외부 공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도 "재벌가의 이혼이 이미 알려졌고 당사자도 언론을 활용해 입장을 내고 여론전을 하는 경우도 있어 법을 적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앞선 황 변호사도 "해당 조항으로 처벌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면서 "이미 당사자들이 인터뷰 등을 하면서 외부적으로 공표했기 때문에 보도 금지 범위를 확정해 놓았기에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위법성 때문이라기보다는 대중들에게 판결이 널리 퍼지는 것을 경고하려는 차원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서울고법도 2017년 가사사건의 보도 금지 원칙 관련 판결에서 가사소송법 10조의 취지는 '당사자의 사생활권 보호'라고 밝히며 대상자가 공개된 사건에 적용하기 어렵다고 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또 다른 가사사건 전문 변호사는 "판결문에는 공개되지 않은 개인정보가 있어 처벌 여지가 있다"며 "불법 유포된 것을 알았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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