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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9-01 11:17
[시애틀 수필-김윤선] 모자라고 아픈 ‘우리’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860  

김윤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고문)

 
모자라고 아픈 ‘우리’
 
그 즈음 남자는 그곳의 붙박이였다. 구걸 메시지를 담은 종이 팻말을 들고. 신의 은총을 비는 글귀도 있었다. 167번 고속도로에서 켄트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남자는 그림자처럼 서 있곤 했다.

몫은 썩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남자에게 돈을 주는 사람은 별 없었다. 앞만 바라보는 운전자의 꼭 닫은 차창이 너와 나는 경계를 달리한다는 으름장 같았다. 어쩌랴, 누군들 매번 지갑을 열 수는 없는 일, 신의 은총은 그에게 먼저 내려야 할까 보았다.

힐끗 남자를 훔쳐보았다. 그의 무표정한 표정이 마치 주는 사람에게서만 받는다는 나름 편의주의자 같았다. 그러면 다행이고, 은근히 나도 그 물에 휩쓸린다. 정부는 이런 일로 왜 국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걸까, 공연히 짜증이 났다.

짐이라곤 끈 달린 가방 하나와 배낭 하나, 살아가는데 이처럼 삶이 단출할 수도 있다는 걸 남자가 보여준다. 때때로 남자는 영양부족인지 수면부족인지 누렇게 떠 있기도 하고, 또 때로는 가방 옆에 죽치고 앉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도 있다. 그때가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때인지 아니면 끝없는 좌절과 우울증에 빠져 있는 때인지 알 길 없다.

그 날은 뜻밖의 광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자 옆에서 개 한 마리가 겅중거리고 있었다. 뛰는 모습이 별다르다고 생각하는 순간, 잘려 나간 발 하나에 눈이 갔다

앞발 하나가 몽탕하니 짧아서 땅에 닿지 않았다. 아니, 어쩌다 발이. 가슴이 찌릿했다. 버려진 후에 발을 다쳤는지 아니면 다치고 난 뒤 버려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눈은 개의 앞발에 한동안 꽂혀 있었다. 윤기 없는 털과 희끗희끗 드러난 살가죽이 남자의 형편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늘 무표정하던 남자의 얼굴이 환해 보였다. 그들은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듯 천연덕스럽게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남자가 공을 저만치 던지면 개는 겅중거리며 뛰어가서 그것을 주워 왔다. 남자는 구걸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내 개라며 자랑이라도 하는 듯, 아니 그간의 구걸에 보은이라도 하는 듯 성심성의껏 무대를 연출하고 있었다. 둘의 모습이 어찌나 한가로운지 바라보는 내 마음이 다 흐뭇했다. 신호대기 시간이 좀 더 길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 정도였다그러면서 그 개를 거둬준 남자가 고마워서 감격했다

어쩜 그들은 서로의 모자라고 아픈 것에 마음이 끌렸을까. 서로를 선택한 심성들을 이해할 것 같았다. 알고 보면 연민이야말로 사랑에 이르는 첫걸음이 아니던가. 그간의 내 이기심이 불현듯 되살아나 날 부끄럽게 했다.

최근에 신문에서 읽은 글이 생각났다. 우연히 개를 기르게 된 노숙인의 삶이 바뀐 얘기. 개에게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일을 하게 되면서 마침내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왔다는 내용이다. 남자에게도 그런 행운이 함께 하기를 기도했다.

LA에 한인 노숙자가 늘어난다는 신문의 칼럼이 눈길을 잡는다. 이민자로서의 삶이 어찌 평탄하기만을 바랄까마는 피폐했을 그들의 삶에 짐작이 간다. 노숙인의 주원인이 됐던 마약이나 도박, 알코올이 최근엔 경제문제 다음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그만큼 미국에서의 삶이 각박해져간다는 반증이다

턱없이 오른 집값과 물가도 한 몫을 하리라. 그러나 국가마저도 그들을 포기한다면 그들은 어디에 등을 비빌 수 있을지. 지치고 힘든 이가 오기엔 미국도 이미 먼 나라가 됐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 듯싶다.

영화 <The Soloist>가 생각난다. 줄리아드 음대 재학 중 정신분열증으로 걸인이 된 흑인 첼로연주자와 LA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사이에 있은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두 줄의 현 위에 세상을 올려놓은 사나이> 란 칼럼으로 대중의 관심을 모은 칼럼니스트 스티브는 거리의 악사 나다니엘에게 진정한 우정을 느끼면서 환청과 망상으로 날뛰는 그를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게 도우는 얘기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랑만큼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 약이 없다는 걸 영화가 말하고 있다.

남자와 개의 교집합은 사랑이다. 모자라고 아픈 이들끼리 단번에 느끼는 감성, 그들이 ‘우리’가 된 이유다. 우울하고 어두운 얼굴에서 벗어난 남자의 표정이 그것을 말하고 있지 않던가. 사랑하는 마음이 사랑받는 마음보다 훨씬 행복하다는 게 그에게는 명약이다.

요즘 그들은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그들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가 되어있을 거라고, 또한 ‘우리’의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마련하려는 남자의 의지가 살아나고 있을 거라고. 그러고 보면 행복이란 게 참 사소하다. 함께 살아갈 가족, 마음을 나눌 이웃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누리는 충분조건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나는 그 길목을 지난다. 남자가 있던 그곳에서 나는 환영처럼 ‘우리’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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