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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6-29 12:20
눈산조망대/ 마지막 눈산 등정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1,695  

윤여춘 한국일보 시애틀지사 고문

마지막 눈산 등정
 
만년설 레이니어 산(14,410피트) 330여 차례나 오른 쌍둥이 산악인이 시애틀에 있다. 올해 9순을 맞은 휘테이커 형제다. 형 짐은 1963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했다. 50주년이었던 2013년 이사콰 쿠거 마운틴의 인기 등산로가 그의 이름으로 개명됐다. 동생 루는 레이니어 등반안내회사 RMI를 차려 레이니어를 뒷동산 오르듯 했다.

그러나 이들 전설적 쌍둥이 산악인의 기록은 내 기록의 반 토막 정도밖에 안 된다. 믿거나 말거나 나는 오늘까지 눈산을 628 차례나 올랐다. 휘테이커 형제는 둘이서 통산 330회 등정의 대기록을 달성하는데 반세기가 걸렸지만 나는 혼자서 12년만에 그 두배 기록을 세웠다. 잠꼬대 같은 말이라서 아무도 믿지 않을 터이다. 그래서 마음 놓고 하는 헛소리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눈산을 한번밖에 오르지 않았다. 2006년 여름이었다. 그나마 정상까지는 엄두도 못 내고 1만피트 남짓한 캠프 뮈어(베이스캠프)까지만 올랐다. 국립공원 당국의 퍼밋 없이 오를 수 있는 ‘아마추어 정상’이다.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 엉겁결에 시애틀산악회 팀 10명에 ‘꼽사리’로 끼어 올랐다가 죽을 맛을 봤다. 논산 훈련소는 ‘저리 가라’였다.

눈이 스며들어 질척거리는 등산화를 끌며 가파른 빙판을 4시간쯤 오르다가 베이스캠프를 50여미터 남겨놓고 주저앉았다. 두 다리에 동시에 쥐가 났다. 일찌감치 포기하지 않은 게 후회막급이었다. 베이스캠프에 둘러 앉아 희희낙락 점심 먹는 동료들 모습이 빤히 보였다. 한참 후 쥐가 풀려 정상까지 기어가면서 두 번 다시 눈산에 오르지 않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1년도 안 돼서 생각이 달라졌다. 눈산을 오르는 고생을 각오하면 못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오래전부터 망설여온 칼럼을 쓰기로 결심했다. 당시는 정년퇴직을 코앞에 둔 때여서 내가 만드는 시애틀 한국일보에 뭔가 흔적을 남기고 싶었고, 그를 통해 독자들과도 소통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2007 421일 ‘눈산 조망대’ 첫 회가 게재됐다.

레이니어 산 베이스캠프에 가상의 조망대를 세워놓고 매주 토요일 그곳에 오르는 마음으로 칼럼을 썼다. 서북미 동포들의 삶과 워싱턴주의 역사, 문화, 사람, 풍물 등을 폭넓게 다룰 욕심이었지만 역시 레이니어 빙판만큼 어려운 고빗길이었다. 능력을 감안 않고 욕심만 앞세웠다. 눈산을 올랐을 때처럼 중도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고생보다는 보람이 더 컸다. 칼럼이 예상했던 100여회를 훌쩍 넘긴 후 그중 80여 편을 추려 단행본 ‘시애틀: 춘하추동’을 정년퇴직 뒤인 2011 4월 발간했다. 책이 나온 후에도 운 좋게 칼럼을 계속 썼다. 독자들의 호응과 격려도 뜻밖에 뜨거웠다. 뉴욕의 한 독자는 나를 격려해주려고 수소문 끝에 내 핸드폰 전화번호를 알아냈다며 의기양양했다.

몇 년전 LA의 한인타운 식당에서 나를 힐끗힐끗 바라보던 한 중년여성이 “칼럼 재미있게 읽습니다”라고 말해 깜작 놀랐다. 한국일보 미주판에는 내 칼럼에 얼굴사진이 딸려있다. 부인과 아들의 괴질로 고통 겪는 한 ‘죄 없는 목사님’의 얘기를 칼럼에 쓴 후 전국에서 적지 않은 성금이 답지했다. 당초 성금을 바라고 쓴 칼럼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감격했다

오늘 레이니어 산을 마지막으로 올라 조망대를 철거하고 하산한다. 628번째 칼럼을 공교롭게도 628일 쓰게 됐다. 6월말은 내가 시애틀에 전근 온지 꼭 20년째이자 한국일보 통산 근속 50년째 되는 날이다. 그동안 한국일보는 물론 시애틀N, 한국문인협회 및 시애틀산악회의 웹사이트를 통해 눈산 조망대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거듭거듭 감사드린다.

“이 몸이 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더 욕심내랴…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 도연명의 산문시 ‘귀거래사’ 대목이다. 이제 나도 아름다운 시애틀을 떠나 삭막한 LA로 돌아가며 여러분께 작별인사를 드린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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