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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2-29 10:49
눈산조망대/ 버리기와 바라기
 글쓴이 : 시애틀N
조회 : 2,065  

윤여춘 한국일보 시애틀지사 고문

버리기와 바라기
 
매년 12 31일 밤 뉴욕에서 한 세기 이상 이어져온 전통의 새해맞이 행사가 펼쳐진다. 시간을 상징하는 공(time ball) 11 59분부터 60초간 공중에서 하강한 뒤 자정 정각에 멈추면 폭죽이 터지면서 타임스 스퀘어에 모인 100여만 시민이 함성으로 새해를 맞으며 올드랭자인을 합창한다. 이 장면은 전국과 지구촌에 TV로 생중계되거나 녹화 보도된다.

서울의 보신각 제야타종을 소꿉장난처럼 보이게 만드는 이 행사는 1907년 뉴욕타임스 신문사 사주 아돌프 옥스가 시작했다. 그는 당시 마천루 급이었던 25층짜리 새 사옥 ‘원 타임스 스퀘어’(타임스 타워로도 불린다)를 마련한 후 사세를 자랑하기 위해 세밑에 건물 옥상에서 불꽃놀이를 벌여오다가 1907년 더 극적인 ‘공 하강 놀이’를 추가해 대박을 터트렸다.

뉴욕타임스도 상징하는 거대한 타임 볼은 원래 나무로 만들어 안에 백열전구 100개를 넣었었다. 그로부터 111년이 지난 지금은 반짝이는 삼각형 크리스털 조각으로 만들어졌고 LED 조명이 컴퓨터로 조작된다. 그 공이 타임스 타워 옥상에서 사다리를 타고 한해의 마지막 1분간에 걸쳐 141피트를 하강하는 동안 군중이 한 목소리로 시간을 카운트다운 한다.

요즘은 ‘타임스 스퀘어 연맹-카운트다운 연예사’가 행사를 주관한다. 보신각 행사처럼 현직 시장이 특별 초청인사와 함께 공 하강 단추를 누른다. 작년엔 ‘미투’ 캠페인 창시자 타라나 버크 여인이 초청됐고, 그 전해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퇴임시각을 1분 남기고 초청됐다. 세계적으로 언론인 박해가 심했던 올해는 ‘언론인 보호위원회’ 인사들이 초청된다.

실제로 이 행사는 자정6시간 전에 시작된다. 광장 주변 도로들이 모두 폐쇄된 후 오후 5 59 40초부터 20초간 공 올리기 카운트다운이 벌어진다. 행사가 모두 끝나면 통상 ‘올드랭자인’(가이 롬바르도 악단), ‘뉴욕, 뉴욕’(프랭크 시나트라), ‘아름다운 미국’(레이 찰스), ‘참으로 멋진 세상’(루이 암스트롱), ‘무지개 넘어’(아이지) 등 히트곡들이 울려 퍼진다.

섣달그믐 밤 불꽃놀이는 세계 대다수 도시에서 벌어진다. 시애틀의 상징인 스페이스 니들도 온통 화려한 불꽃으로 뒤덮인다. 서울에서도, 평양에서도 펼쳐진다. 하지만 공 하강식이 곁들여진 곳은 뉴욕뿐이다. 그 뉴욕에 공 하강식 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또 다른 명물 세모행사가 있다. 일종의 군중 망년회인 ‘굿 리던스 데이(Good Riddance Day)’ 해프닝이다.

한 해 마지막 밤 불꽃놀이가 새해에 행운과 평강이 깃들기를 소망하는 행사라면 12 28일 대낮에 벌어지는 굿 리던스 데이는 지나간 한해에 겪은 실패, 좌절, 고독, 당혹, 치욕 등 불쾌한 기억들을 몽땅 떨쳐버리는 행사다. 일부 남미 국가 사람들이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그 해의 나쁜 기억을 상징하는 물건들을 헝겊 인형에 넣고 불태우는 풍습에서 모방했다.

역시 타임스 스퀘어 연맹이 주최하고 문서파쇄기 회사인 ‘슈레드 잇(Shred-it)’이 주관하는 이 행사는 올해가 12회째이다. 작년엔 타임스 스퀘어에서 열렸지만 올해는 어제 12시부터 1시까지 브로드웨이 플라자에서 열렸다. 주최 측은 행인들에게 종이를 나눠주고 잊고 싶은 기억을 요약해 적도록 한 후 이를 회수해 거대한 슈레드 잇 트럭에 넣어 분쇄시켰다.

소시민들이 망각하고 싶어 하는 기억은 다양했다. 실직했거나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의 회한이 많았고, 봉급을 몽땅 학자금융자 상환에 바친 새내기 직장인들의 설움도 있었다. 실연한 젊은이들이 적은 마음의 상처도 있었고, 인종차별을 당한 소수민족, 성차별을 당한 동성애자들의 한도 있었다. 일년 열두달의 고생을 모두 잊어버리고 싶다는 홈리스도 있었다.

물론 이런 행사에 참여한다고 나쁜 기억들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섣달그믐밤에 올드랭자인을 목 터지게 부른다고 새해에 복이 터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버리기와 바라기 행사조차 없는 세모는 매우 쓸쓸할 것 같다. 한인사회에 늘어나는 망년회 모임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한해가 바뀌는 순간을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맞는 것도 그 때문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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